北선원들의 수상한 일주일⋯생쌀 먹고 기름은 오징어 팔아 조달?

입력 2019.06.26 09:56 | 수정 2019.06.26 14:32

지난 15일 새벽 강원도 삼척항에 입항해 귀순한 북한 목선에는 쌀 29㎏과 함께 양배추·감자·고추·당면 등 음식 재료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멸치 조림, 고추·깻잎 장아찌, 소금과 된장 등 반찬도 실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식수와 냄비, 난로 같은 취사도구가 있었는지를 놓고는 정부 당국의 중간 보고를 받은 국회 정보위원들의 전언이 엇갈리고 있다. 또 조업·항해를 위한 통신기기와 GPS 장치, 안테나, 전선, 연료통, 손전등, 그물은 있었지만, 잡은 물고기를 보관하는 어창(魚倉)은 비어 있었다. 북한 선원 중에 한 사람이 다림질로 빳빳하게 주름이 잡힌 인민복을 입은 것도 의구심을 낳았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함경북도에서 지난 9일 출항, 15일 새벽 삼척항에 입항할 때까지 7일간 목선에서 생활했다. 정부 합동정보조사단은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고 목선과 해당 물품들을 정밀 분석 중이다.

지난 15일 소형 목재 선박을 이용해 강원도 삼척항에 도착한 북한 선원들이 배를 정박한 채 대기하고 있다. 붉은 원 안에 있는 것이 그물이다./김경현씨 제공
지난 15일 소형 목재 선박을 이용해 강원도 삼척항에 도착한 북한 선원들이 배를 정박한 채 대기하고 있다. 붉은 원 안에 있는 것이 그물이다./김경현씨 제공
◇ 쌀·양배추·감자 등 식재료는 있는데 취사도구 유무는 불확실

국회 정보위원회 등에 따르면 북한 어선에는 쌀 29㎏과 함께 양배추(6.1㎏)·감자(4.1㎏)·고추·당면 등 음식 재료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멸치 조림, 고추·깻잎 장아찌, 소금과 된장도 10.3㎏ 가량 실려 있었다.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함경북도에서 조업을 위해 9일 자정에 출항했다. 그런데 취사도구가 있었는지는 정보위원들 사이에서도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국정원이 최초 보고에서는 조리도구가 있다고 했는데, 막상 삼척항에 갔을 때는 취사도구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취사도구 없이 바다에서 일주일 이상 운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며 "더욱이 조업을 하다 기관 고장으로 닷새를 표류하다 엔진을 고쳐 삼척항으로 들어왔다는 북한 어민의 말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보위 한국당 간사인 이은재 의원은 26일 "배 안에 칼, 도마, 그릇, 냄비, 가스버너 등이 발견됐다고 믿을 만한 기관에서 새로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는 "취사도구가 없었다면 생쌀을 먹지 않았겠느냐"라고 했다.

◇ 빈 어창, 오징어 물물교환으로 기름값으로 사용

정보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함북 경성군 집단포구에서 25~26척과 함께 선단을 이뤄 9일 0시에 출항했고, 10일 오후 어장에 도착해 이틀동안 어로 활동을 했다고 합동정보조사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2일 오전 9시쯤 갑자기 남하를 시작했다.

삼척항 입항 당시 목선의 어창은 비어있었고, 배에는 녹색 기름통이 2개 가량이 실려 있었다. 목선은 직선 거리만 500㎞가량인 경성(함경북도)~삼척 구간을 항해해 왔다. 길이 10m, 폭 2.5m, 무게 1.8t의 28마력 소형 목선이 삼척항까지 항해하려면 최소 1000L의 기름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많은 기름을 어디에 싣고 왔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또 연료는 1000L를 쓰고도 더 남아 있었다.

바른미래당 유의동 의원이 지난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귀순 관련 북한 어선 항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유의동 의원이 지난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귀순 관련 북한 어선 항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이에 대해 정보위 관계자는 "국정원에서는 북한 선원들이 바다에서 잡은 오징어를 큰 배에 곧바로 팔고 그 돈으로 기름을 넣었다고 설명했다"며 "바다 위에서 오징어를 잡아 돈을 받고, 생필품을 사고 파는 물물교환이 성행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북한 목선이 오징어 잡이를 했다고 보고했지만, 어창은 비어있었다. 국회 정보위 한국당 간사인 이은재 의원은 "국정원에서는 이 배가 오징어를 잡았다고 하는데, 삼척 지역 주민들은 '오징어를 잡으면 그 과정에서 먹물 등이 튀어나와 굉장히 더러운데 배 안이 너무 깨끗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25~26척이 선단을 이룰 때 냉동선, 운반선 등 각자 역할분담이 있는데, 이 배는 '조업선'의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국회 정보위 관계자는 "국정원이 공개한 GPS 지도를 보면, 이 배는 어장에서만 4~5번 옮겨 다녔고, 울릉도 인근을 거쳐 삼척으로 내려왔다"며 "문제는 (경성에서 어장까지) GPS 기록이 없고, (어로 지역에서 울릉도까지) 기록이 없다"고 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 선박은 울릉도 근처에서 며칠간 표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보고서를 보면 '북한 어선의 기관 고장은 없었다'고 적혔다.

정보위 관계자는 "아무래도 엔진을 끄고 있었던 것 같다"며 "기관이 고장났다고 한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르지만 첫 진술은 그랬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GPS를 켰을때 경로가 확인되는 지역은 빨간색으로 표시되는데, 앞서 밝힌 두 부분은 확인이 안 된 것으로 나와 국정원에서 포렌식 복구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칼주름 인민복...남한에 가족(이모) 만나러 가는 길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북한 선원 4명은 20~50대로 구성됐다. 20대로 추정되는 가장 젊은 선원은 인민복을 입었고, 30대로 추정되는 선장은 전투복 상·하의를 입었다. 50대로 추정되는 기관장은 웃옷을 전투복으로 입었고 40대로 추정되는 선원은 일반복을 입었다. 이 가운데 귀순한 두 사람은 선장과 인민복을 입은 20대 남성 등 2명이다. 50대 기관장과 40대 추정 선원은 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귀순한 20대 남성은 다림질로 칼주름이 잡힌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작은 목선을 타고 며칠 간 수백㎞를 항해한 사람치곤 지나치게 말끔해 '군인설' '간첩설'도 돌았다. 특히 이 인민복을 입은 남성이 삼척항에서 목선을 112에 신고한 주민에게 "서울에 이모가 있다"며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보위 관계자는 "정말 간첩이라면 칼주름 잡힌 옷을 입고 귀순한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으냐"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에 따르면, 과거와 달리 요새는 북한에서는 인민복이 귀한 게 아니라고 했다"며 "인민복이나 전투복이 옷감이 튼튼해서 작업용으로 주로 입고, 친척 중에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나 다 빌려서 입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인민복을 입은 선원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20대인데, 인민복이 좋아서 입었을 리가 없지 않나"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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