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버금가는 삶의 고통… 어머니 떠올리며 노래했죠"

입력 2019.06.26 03:49

김혜순… 지난 6일 '죽음의 자서전'으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

김혜순 시인은 “옛날에 쓴 내 시는 시간 속에 파묻고 가기 때문에 전혀 읽지 않는다”며 “지금 생각하는 것에 매달려 시를 쓸 뿐”이라고 했다.
김혜순 시인은 “옛날에 쓴 내 시는 시간 속에 파묻고 가기 때문에 전혀 읽지 않는다”며 “지금 생각하는 것에 매달려 시를 쓸 뿐”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시(詩)라는 것과 시인의 감수성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先驗的) 생각이라고 본다. 내 시집은 죽은 자로서 죽음을 노래한 게 아니라, 산 자로서 죽음에 대해 쓴 자서전이다."

올해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혜순(64) 시인이 25일 기자들과 만나 "토론토에서 열린 시상식(지난 6일)에는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간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심 후보 시인이 시상식 전날 열리는 낭송회에 참석하면 1만달러를 준다고 해서 갔다가 뜻밖에 상을 받았다"며 웃었다.

김 시인의 수상작은 시집 '죽음의 자서전' 영역본이다. 3년 전 문학실험실 출판사에서 펴낸 시집을 미국 시애틀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최돈미(57) 시인이 영역했다. 캐나다 기업인 스콧 그리핀이 지난 2000년 제정한 그리핀 시문학상은 영어 시집을 창작과 번역으로 나눠 심사하고, 각 수상자에겐 저마다 상금 6만5000캐나다달러(약 5700만원)를 준다. 단일 시집에 주는 문학상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 있는 상이다. 김 시인의 수상은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문학상을 받은 것에 상응하는 일이다.

그리핀 시문학상의 국제 부문 상금은 원작자 40%, 번역가 60%로 나뉜다. 김 시인은 "영어로 번역된 시집에 주는 상이니까 당연히 번역자가 더 많이 받는 게 맞는다"며, "주최 측이 한 해 동안 영역된 시집 500~600권을 책장과 함께 심사위원들에게 보내 다 읽게 한다는데, (치열한 경쟁을 뚫은) 내 시집의 번역자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시상식장에서 번역자가 '우리는 아시아인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결코 상을 받지 못할 것이니까, 1만달러를 받고 축제를 즐겨요'라고 했다. 시상식장에는 전부 백인들만 앉아 있었다. 동양인은 나와 번역자뿐이었다. 그런데 내 이름이 불리자, '이건 현실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시인의 수상 시집은 죽음에 버금가는 삶의 고통과 슬픔을 49편의 시로 조명했다. 그는 "죽은 자가 중음(中陰)의 공간에 머문다는 49일간을 염두에 두고 49재를 의식해 49편으로 꾸몄다"며 "원래 더 많이 썼지만 멋있게 보이려고 49편으로 잘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집에서 시 '저녁 메뉴'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오늘 엄마의 요리는 머리지짐/ 어제 엄마의 요리는 허벅지짐/ 내일 엄마의 요리는 손가락탕수'라며 어머니의 희생을 엽기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지난주 모친상을 당한 시인은 "이 시에 '엄마'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 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아 최근 13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문학과 지성사)을 낸 시인은 "이 시집도 영어로 번역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껏 그의 시집 11권이 영역됐을 뿐 아니라 프랑스어 3권, 독일어 2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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