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심 줘서" "성범죄 전력 있어서"…신림동 사건 '강간미수' 적용 이유는?

입력 2019.06.25 18:27 | 수정 2019.06.25 18:54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원룸 건물에서 피의자 조모씨(사진 오른쪽)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왼쪽 하얀 원)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원룸 건물에서 피의자 조모씨(사진 오른쪽)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왼쪽 하얀 원)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최근 혼자 사는 여성을 쫓아가 여성의 집에 들어가려한 범죄 사건이 서울 신림동에 이어 역삼동, 광주광역시, 전남 광양 등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피의자 조모(30)씨는 25일 구속기소됐고, 지난 22일 광주광역시에서 새벽 시간 여성의 오피스텔에 쫓아가 "재워달라"며 집에 침입하려한 혐의를 받는 김모(39)씨도 최근 구속됐다.

검찰과 경찰은 조씨에 대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김씨 사건은 적용을 검토 중이다. 강간미수 혐의가 인정되려면 이들이 성범죄를 저지르려 했다는 의도가 있었다는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 조씨와 김씨는 모두 "그럴 의도가 없었다"며 성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상태다. 검찰과 경찰은 여성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강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을까. 김씨보다 먼저 법정에 서게 된 조씨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강력 처벌' 여론에…경찰·검찰,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 적용
조씨의 범행,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알려지자 피의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특히 범행 당시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의 공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조씨가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려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신림동 강간미수범을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자신의 거주지가 아님에도 혼자 사는 여성의 집 근처를 목적 없이 서성이는 남성들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25일 오후 6시 현재 9만9628명이 동의했다. 청원자 20만명이 넘으면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경찰은 당초 조씨에 대해 주거침입 혐의만을 적용했다. 그러나 여론이 들끓자 경찰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범행 현장에서 상당 시간 머물며 피해자 집 문을 강제로 열려고 시도하는 등 일련의 행위에 대해 주거침입 강간의 실행 착수가 인정된다고 판단된다"며 성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씨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구속수감됐다.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법원의 영장발부 사유다. 조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행위의 위험성이 큰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조씨의 도주 우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해서 혐의를 유죄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검찰이 영장청구서에 적시한 주거침입 혐의 등을 놓고 여러 정황증거를 따져본 뒤 구속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조씨를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조씨가 "계속해서 문을 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하면서 피해자에게 극도의 불안감과 외포심(畏怖心·두려움)을 준 행위는 강간죄 실행의 착수에 해당하는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다만 조씨가 문을 열지 못해 범행을 포기했고, 미수에 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어도 강간죄의 구성 요소인 폭행·협박을 인정한 경우도 있다.

법무법인 이헌 신병재 변호사는 "최근 들어 집 아래 담장에 붙어 남의 집을 엿보는 것도 주거침입으로 인정되고 있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며 "‘신림동 강간미수'와 유사한 사건들의 발생으로 주거침입 강간미수죄가 성립하는 데 요구됐던 피의자의 폭행이나 협박의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미성년이나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신체를 살짝 누르기만 해도 폭행·협박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기준이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피의자 조모씨가 지난달 3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피의자 조모씨가 지난달 3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범행 의도 있었나…"기억 안나"vs. "강간 고의 인정돼"
조씨 재판의 최대 쟁점은 조씨에게 ‘범의(犯意)’가 있었는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씨에게 ‘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술에 취한 젊은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특정한 다음 은밀히 뒤따라가 폐쇄된 공간인 집 안에 침입하려던 매우 계획적인 범행"이라며 "조씨의 성향이나 행위, 침입을 시도한 곳이 여성 혼자 거주하는 원룸이라는 장소적 특징 등을 종합해 볼 때 강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했다. 빈집으로 착각하거나, 집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침입을 시도한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결과적으로 드러난 피해가 없는’ 범죄들에 대해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미수죄를 적용한 것은 다소 무리라는 지적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문을 열려고 했다는 ‘시도’를 ‘강간 실행의 착수'로 보기는 어렵다"며 "성범죄를 목적으로 침입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보이기는 하지만 추측만으로 범죄가 성립했다고 하기엔 부담스럽다"고 했다.

조씨는 수사 과정에서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등 핵심 물증이 있기 때문에 상황 자체는 부정할 수 없고, 대신 범의가 없었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조씨는 2012년에도 술에 취한 20대 여성을 발견하고 모자를 꺼내쓴 다음 뒤따라가 강제로 추행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과가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려 한 것 아니냐는 반박이 가능한 대목이다.

1991년 대법원 판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8세 처녀가 혼자 자는 방으로 들어가려고 기도한 것은 명백한 것이므로, 방실(傍室) 침입의 목적에 관한 합리적인 변명이 없는 이 사건에서 간음 목적으로 침입하려고 했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을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조씨 사건에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아닌 합리적 해명이 없다면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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