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만에 5골, 역전 드라마 쓴 '김병수 매직'

조선일보
입력 2019.06.25 04:04

0대4로 끌려가다 역전승
"포항이 역습작전 쓰는 것 보고 정조국 투입한 게 유효했다"

K리그 경기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김병수 강원 감독.
K리그 경기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김병수 강원 감독. /프로축구연맹
"보시는 팬들은 짜릿했겠지만 (4실점을) 당한 저희는 어땠겠어요.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죠."

24일 전화로 만난 김병수(49) 강원FC 감독의 목소리엔 전날 겪은 역전 드라마의 흥분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강원은 23일 K리그 17라운드 홈경기에서 포항에 0―4로 끌려가다 후반 25분 조재완의 만회 골을 시작으로 다섯 골을 연속으로 터뜨리며 기적 같은 5대4 역전승을 거뒀다. 후반 추가 시간에만 세 골을 넣었다.

"솔직히 4―4가 되는 동점골 때만 해도 그냥 무덤덤하게 벤치에 서 있었는데, 후반 50분 정조국의 역전 골이 터졌을 땐 나도 모르게 그라운드 쪽으로 달려나가고 있더라고요. 라커룸에 돌아와선 태연한 척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하하."

4골 차 승부를 뒤집은 건 1983년 국내 프로축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유럽 축구에서도 드문 일이라 외신들도 이날 경기를 집중 조명했다.

영국 매체 '스포츠바이블'은 "강원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기브미스포츠'와 독일 'TAG24'도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경기"라고 평가했다. 강원(조재완)과 포항(완델손) 두 팀에서 모두 해트트릭(한 선수가 한 경기에 3득점) 기록이 나온 것도 K리그 통산 세 번째다. 김 감독은 "K리그 흥행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23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포항에 5대4 역전승을 거둔 강원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라커룸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3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포항에 5대4 역전승을 거둔 강원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라커룸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강원FC

김 감독은 2008년부터 9년간 영남대 감독을 맡아 김승대·이상기(이상 포항) 등을 길러냈다. 영남대는 포항 스틸러스의 '유망주 화수분' 역할을 했다. 누구보다 포항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는 김 감독은 "포항이 후반전 들어 역습 형태로 변환하는 것을 보고 스트라이커 정조국을 투입하며 공격에 박차를 가했는데 다행히 골이 제때 터져줬다"며 "선수들이 이제 능동적으로 경기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강원은 포항전 승리로 K리그1 12개 팀 중 5위(승점 24·7승3무7패)를 기록 중이다. 2부리그 소속이던 강원은 1부리그에 승격한 뒤 2017년 6위로 선전했다. 하지만 2018년 8위로 부진했고, 시즌 도중인 8월 김병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전술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던 김병수 감독은 시즌 후 팀 색깔을 바꾸면서 올해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김 감독의 축구 철학은 간단하다. '공을 우리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다. 그는 포항전 직전에도 "내가 축구를 잘한다고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공을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라며 "천재는 원 터치로 공을 다루고, 그냥 준수한 선수는 투 터치, 스리 터치를 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낸다"고 했다. 김 감독은 "그런 면에서 이강인은 '축구 천재'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볼 컨트롤' 능력을 강조하는 김병수 감독은 훈련의 90%를 공을 가지고 진행한다. 김 감독이 '티키타카(탁구공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짧은 패스 위주로 전개하는 축구를 일컫는 스페인어) 전술'을 쓰는 이유도 짧은 패스 중심의 플레이가 공을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고교 시절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지독한 발목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다. 그는 "선수 김병수는 불행했지만 축구인 김병수는 불행하지 않다"며 "언젠가는 감독으로 성공해 유럽에 진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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