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년뒤 전문인력 사라질 탈원전 한국… UAE 변심 불렀다

조선일보
입력 2019.06.25 03:01 | 수정 2019.07.20 08:06

原電정비 독점수주 무산, 왜

한국 업체에 최소 15년의 장기정비계약을 몰아줄 것으로 기대되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原電) 운영 업체 '나와'가 계약 조건을 사실상 '단순 하도급' 수준으로 축소한 데에는 우리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10년前, 웃으며 원전수출 계약했는데 - 2009년 12월 27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UAE 아부다비에서 칼리파 대통령과 바라카 원전 4기 건설(약 21조원 규모) 사업 계약 서명식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10년前, 웃으며 원전수출 계약했는데 - 2009년 12월 27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UAE 아부다비에서 칼리파 대통령과 바라카 원전 4기 건설(약 21조원 규모) 사업 계약 서명식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계약 조건 변경에 대해 UAE 측에서 '한국의 원전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고 보도 자료에 명시했다"고 했지만, 원전 업계와 학계에선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며 국내에서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마당에 UAE가 60년짜리 장기정비계약을 한국에 몰아줄 리는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UAE 회사가 원전 정비 주도

나와는 당초 우리와 협상 중이던 '장기정비계약'(LTMA)을 '장기정비사업계약'(LTMSA)으로 바꿨다. 영어 원문으로 보면 '서비스(Service)'가 중간에 첨부된 것이다. 나와는 이날 발표한 보도 자료에서 '왜 LTMSA로 바꿨는지'에 대해 "UAE 법률에 의거, 나와가 바라카 원전 정비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계약 명칭을 바꿨다"며 "나와의 주도하에 단일 업체가 아닌 복수(複數)의 협력사가 바라카 발전소 정비 용역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건 '나와의 주도권'과 '복수의 협력사'이다. 한국형 원전의 핵심 운영·정비 기술은 한국 업체들만 갖고 있는데도 나와는 한국 업체뿐 아니라 다른 나라 업체들과도 정비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쉽게 말해 나와가 원전 정비를 기술적으로 총괄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국 업체들로부터는 필요할 때마다 인력을 지원받아 애프터서비스를 받겠다는 의미다.

착잡한 원전 정비 계약 발표 - 성윤모(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바라카 원전의 정비 계약 수주 결과를 발표하고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착잡한 원전 정비 계약 발표 - 성윤모(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바라카 원전의 정비 계약 수주 결과를 발표하고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뉴시스
계약 기간도 당초 우리가 기대한 15년이 아닌 5년으로 줄었다. 5년마다 양측의 합의로 갱신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국제 상거래 특성상 5년 후 나와가 정비 계약 단가를 깎거나 다른 나라 업체에 줄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5년 후에는 탈원전으로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 붕괴가 상당히 진행됐을 시점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5년에서 10년이 지나면 핵심 기술과 인력 등 원전 생태계 붕괴가 현실화될 것이란 점이 UAE의 변심을 불렀다"며 "한국이 원전 산업에서 빠지고 나면 스스로 원전을 가동하고 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플랜 B를 가동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자화자찬, 원전계는 분통

이번 장기정비계약 체결에 대해 정부와 한수원은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업들이 원전 정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상당 부분을 우리가 담당하게 됐다는 평가를 한다"고 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무산될 뻔한 계약을 다시 살렸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정 사장은 "제가 2018년 4월 취임 후 처음 방문했을 때 UAE 측에서 '한전 KPS랑 정비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더라"며 "그걸 내가 되살려냈다는 것은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관련 계약 정리 표

이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UAE 입장에선 탈원전 때문에 한국형 원전의 정비를 향후 다른 나라 업체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라며 "그걸 자꾸 '탈원전과 상관없다'고 하는 우리 정부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라고 했다.

UAE가 이번 정비계약을 통해 한국과의 원전 협력 관계를 격하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전기가 남아도는 UAE가 2009년 한국에 원전을 발주한 건 제3국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하려는 구상이었다"며 "한국 원전 생태계 붕괴를 지켜본 UAE가 한국을 원전 산업의 동반자에서 '머슴'으로 강등시킨 게 이번 계약"이라고 했다.


[반론 보도] 한국, UAE에 원전 수출하고도 정비는 5년짜리 '하도급 계약' 관련

본지는 6월 25일 자 '한국, UAE에 원전 수출하고도 정비는 5년짜리 하도급 계약' 제목의 기사 등에서 UAE와의 원전 정비 계약이 탈원전 영향에 따른 사실상 하도급   계약이라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UAE 측과의 장기 정비 사업 계약은 기존 계약 방식대로 체결된 것으로 하도급 계약이 아니며, 당초 최소 15년간 3조원 규모로 체결될 것이라는 전망은 UAE 측과 합의된 바 없고 언론 등에 의한 예상에 따른 것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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