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는데… 장관·차관·국장 다 "몰랐다"

입력 2019.06.25 03:01 | 수정 2019.06.25 15:30

文정부 史觀 반영해 '1948년 대한민국 수립'→'정부 수립' 바꿔
검찰, 장·차관 소환조사도 않고 실무 2명을 최종책임자로 결론

검찰의 '국정교과서 불법 수정' 사건 공소장에는 교육부가 지난해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 수정의 최초 기획부터 여론 조작, '집필자 패싱(건너뛰기)', 협의록 위조 등 전 과정에 불법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장과 교육연구사 등 담당 공무원 2명과 출판사 관계자 1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교육계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적폐로 몰아 청와대 고위직부터 줄줄이 수사 의뢰했던 것과 비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곤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작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곤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르쇠로 일관했던 김상곤

'집필자 패싱' 교과서 논란은 지난해 3월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 집필 책임자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가 "나도 모르게 정권 입맛에 맞게 교과서 내용이 수정됐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회의에 출석한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교과서 수정·보완은 사회적 요구 등을 반영하여 적법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수정 내용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출판사와 집필자들의 문제로, 우리로서는 따로 지침을 준 것이 없다"며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교육부가 (불법 수정 논란에 대해) 조치할 것은 없다고 본다"고도 했다.

◇검찰, 실무자 2명만 처벌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교육부 중·하위직 2명을 교과서 불법 수정의 최종 책임자로 결론 내렸다. 그 위의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 등은 제대로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가에서는 "저런 일을 과장이 혼자 벌였다면 누가 믿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세종시의 한 공무원은 "이번 정권이 좋아하는 '적폐 청산'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면, 정권 사람이 책임져야지 왜 공무원이 뒤집어쓰느냐. 걸리면 공무원 탓인가"라고 했다.

지난해 신학기에 연구·집필 책임자 모르게 213곳이나 고쳐져 교육 현장에 배포된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왼쪽). 당시 연구·집필 책임자인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는 교과서 수정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도 출판사가 교육부에 제출한 ‘수정·보완 협의록’(오른쪽)에는 박 교수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지난해 신학기에 연구·집필 책임자 모르게 213곳이나 고쳐져 교육 현장에 배포된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왼쪽). 당시 연구·집필 책임자인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는 교과서 수정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도 출판사가 교육부에 제출한 ‘수정·보완 협의록’(오른쪽)에는 박 교수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교육부
교육부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올해 초부터 담당 과장 등 실무진이 검찰에 불려 다니자 "국장, 실장과 장·차관을 조사해야지, 과장과 연구사만 잡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교육부의 한 과장급 직원은 "적폐 수사를 보고 공무원들이 더 몸을 사리는 분위기에서 상관의 지시도 없이 과장과 연구사가 저런 범죄를 벌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관계자는"문재인 정권의 '사관(史觀)'대로 국정교과서를 고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인데, 책임은 모두 실무 관료가 뒤집어썼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들은 그동안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이 아니라 임시정부 수립 시점인 1919년이라고 강조해왔고, 이것이 교육부가 불법을 무릅쓰고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려 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국정교과서 때는 고위직 엄벌

1년 만에 달라진 국정 교과서 수정

'김상곤 교육부'는 작년 6월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적폐·국정 농단'으로 규정짓고 17명(청와대 5명, 교육부 8명, 민간인 4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수사 의뢰 대상에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관복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비서관 등 고위직이 대거 포함됐다. 교육부와 산하기관 공무원 6명에 대해서는 인사혁신처에 징계를 요구했다. 당시 교육부 측은 "상급자 지시에 따른 중·하위직 실무자의 처벌은 최소화하되 고위 공직자에게는 잘못의 정도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었다"고 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전 정권 잘못에는 고위직이 책임져야 한다고 해놓고, 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은 실무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꼬리를 자르고 있다"고 했다. 같은 불법이라도 처벌은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김상곤 당시 장관은 물론, 청와대 관계 라인들도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김 전 장관뿐만 아니라 그 윗선에 대한 추가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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