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이재용의 결기가 필요하다

입력 2019.06.25 03:14

신은진 산업1부 차장
신은진 산업1부 차장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4년 전 6월 23일 오전 11시. 300여명의 취재진 앞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참담한 심정이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두 차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 부회장은 당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삼성서울병원이 사태의 진원지로 국민적 비난을 받자, 생애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는 2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는 것을 둘러싸고 삼성그룹 수뇌부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비슷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국회나 시민단체 등에서 이 부회장의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는 반대가 많았지만, 이 부회장은 "진정성 있고 책임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며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당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황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동을 거는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쓰러져 1년 넘게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삼성그룹 리더십이 흔들린다는 여론이 들끓을 때 이 부회장이 나섰다. 그의 기자회견은 "사과의 정석을 보여줬다"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정면 돌파를 택함으로써 그룹 경영에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였다"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오너가 직접 사과하자 뒤처리도 깔끔했다. 삼성서울병원은 문제가 됐던 병원 시스템을 고쳤다. 지난해 3년 만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지만 큰 문제 없이 끝났다.

요즘 삼성그룹은 '예전 메르스 당시 위기는 위기도 아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일을 겪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됐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삼성 수사가 시작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수사로 삼성그룹 임직원 8명이 구속됐다. 수사의 칼끝이 이 부회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줄곧 침묵하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모디 인도 총리,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거물들과 만나며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는 것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다. 지금 삼성그룹은 위기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는 돌파 전략은커녕 리더십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이 4년 전 그때처럼 내가 책임지고 끌고 가겠다는 결기를 보여줬으면 한다. 그게 50만 삼성그룹 임직원과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고, 결국 삼성이 살고 이 부회장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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