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79] 전쟁에서 아들과 손자를 잃은 화가

조선일보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2019.06.25 03:09

케테 콜비츠, 부모, 종이에 목판화, 1921~22년, 47.3×65.3cm,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케테 콜비츠, 부모, 종이에 목판화, 1921~22년, 47.3×65.3cm,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독일의 미술가인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1867~1945)는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둘째 아들 페터가 전사했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 즉 아들의 아버지는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돌봐준 헌신적인 의사였지만 그렇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았다. 콜비츠는 여성 최초로 프러시아 미술 아카데미 회원이자 교수가 될 정도로 뛰어난 미술가였지만 자식을 떠나보낸 심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다. 전쟁은 계속됐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목숨을 잃었고, 뒤에 남은 이들은 참혹한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콜비츠는 적극적으로 반전운동을 시작했다.

'부모'는 콜비츠 부부의 모습이다. 그녀는 칼과 끌로 거친 나무를 깎아, 투박하고도 날카로운 선이 나오는 목판화를 선택했다. 매끈한 유화나 정밀한 동판화로는 그들의 슬픔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의지한 채 바닥으로 내려앉아 간신히 몸을 세운 두 사람은 마치 하나로 녹아내린 돌덩어리 같다. 콜비츠는 그림에서 그들 부부의 얼굴을 지워내고 또 지워낸 다음, 큰 손으로 얼굴을 완전히 덮어 버려, 마침내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모든 사람들의 초상을 만들어냈다. 콜비츠는 '그 고통이란 완전한 어둠이었다'고 회고했다. 콜비츠는 이후, 이 판화를 바탕으로 부부의 조각을 만든 뒤, 아들이 잠들어 있는 벨기에의 묘지에 세워뒀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페터의 이름을 물려준 콜비츠의 손자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콜비츠는 1945년 4월, 전쟁이 끝나기 16일 전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그 뒤로도 전쟁은 끝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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