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UAE 원전 우리가 짓고도 정비는 '하도급' 신세

조선일보
입력 2019.06.25 03:19

UAE 바라카 원전의 정비 업무를 UAE 기업이 총괄 책임지고 한국 업체들은 하도급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당초 UAE 원전 정비는 한국이 15년 장기 계약으로 단독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 기대는 무산됐고 한국 업체는 UAE 측이 요청할 때만 인력을 지원한다. 계약 기간도 5년으로 축소됐다. 수주 금액도 최대 3조원으로 기대했던 것이 수천억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앞으로 UAE가 미·영 등의 기업에 정비 업무 일부를 쪼개줄 가능성도 있다.

UAE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한국은 탈원전 선언으로 5년, 10년 뒤 원자력 생태계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유능한 기술자가 몇 명이나 남아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 원전 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는 작년 국회 제출 자료에서 국내 원전 사업 관련 직원 숫자가 현재 2112명에서 2030년이면 1462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해외 정비 인력은 110명에서 2030년 418명으로 늘 것이라 내다봤지만, 이번 UAE 원전 정비 단독 수주 실패로 그 예측도 축소 조정해야 할 것이다. 국내 대학 원자력과 학생들은 미래 불안 때문에 원자력 전공을 포기하거나 복수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또 국내 원전 부품 업체들은 속속 업종을 전환하는 중이다.

바라카 원전은 최소 60년, 길게는 100년을 가동해야 하는 시설인데, 기술 인력과 부품 공급이 가능할지 불확실한 나라와 누가 장기 계약을 맺으려 하겠는가. 국내 에너지 포럼에 참석한 세계원자력협회 사무총장은 "원전 발주국은 건설 후 지속적 관리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해외에 원전을 수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세계적 기후학자 케리 이매뉴얼 MIT 교수는 "스위스 국민이 초콜릿을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초콜릿을 수출하겠다고 하면 한국에서 수입하겠느냐"고 했다.

그런데도 산업부장관은 "한국 기업들이 원전 정비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됐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 한수원은 보도 자료에서 "그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힘써온 양국 간 돈독한 신뢰와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우수한 원전 기술력 및 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UAE와 정비 계약이) 가능했다"고 했다. 이 정도로 상황을 뒤집어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낯 두꺼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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