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문재인·김정은의 머리싸움

입력 2019.06.24 18:35


안보 외교는 무엇으로 할까. 배짱과 ‘무대뽀 정신’으로 할까. 아니면 상호 간 신뢰 구축과 상대방의 선의(善意)로 이루어질까. 양쪽 다 아니다. ‘신뢰’란 말도 허황한 말장난일 때가 많다. 안보 외교는 동물들의 야생 생태계와 똑 닮았다. 안보 외교와 야생 동물 사회에는 모든 게, 오로지, 힘과 지략에 의해 결정된다.

‘워 게임’이란 게 있다. 말 그대로 전쟁놀이다. 대규모로 물리적 충돌이 생기기 전에 가상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시뮬레이션이다. 워 게임에는 전사(戰士)들이 등장한다. 전투 요원, 워리어다. 워싱턴의 트럼프, 베이징의 시진핑, 도쿄의 아베, 평양의 김정은, 그리고 서울의 문재인이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이란을 두고 중동 전략을 짤 때 국방부 차원에서 워 게임을 해보듯이, 우리도 최근 한반도 정세를 두고 테이블 위에서 워 게임을 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트럼프는 ‘채찍과 당근’이라는 전통적인 카드를 쓰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서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며 친서를 꺼내 보였는데, 같은 날 동시에 대북제재 행정명령의 효력을 1년 더 늘이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김정은의 숨통을 조인다. 그러면서 영화 ‘대부’에서 돈 콜리오네가 말하듯,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슬쩍 흘린다.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친서가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를 함께 진행할 수 있다는 제안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정은이 원했던 바다.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해법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트럼프의 친서를 보고 "만족한다" "흥미로운 내용이다" "훌륭한 내용이다",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게 아닐까.

트럼프는 이번 주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서울에 보낸다. 비건은 판문점 혹은 평양에도 갈 수도 있다. 트럼프는 또 비무장지대 방문과 현장 연설이라는 카드를 흔들며 문 대통령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때 비무장지대로 김정은도 내려오고 문 대통령은 트럼프와 함께 올라가고, 그렇게 해서 ‘문재인·김정은·트럼프, DMZ 3자 회담’ 가능성까지 소문이 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이 말한 ‘흥미로운 내용’일까. 알 수 없다.

이번엔 김정은 입장에서 그가 손에 쥔 카드를 보자. 김정은은 평양에 온 시진핑에게 현란한 붉은 양탄자를 깔아 극진히 모셨다. 시진핑은 김정은이 ‘시즌 2 핵 도발’로 동북아에 제3의 불안 요소를 만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김정은의 체제 안전과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은 중국 카드를 흔들면서 트럼프와 친서를 교환하며 맞상대를 하고 있다. ‘중국이 나서기 전에 미국이 해결하라’는 압박 카드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시진핑, 둘에게서 동시에 데이트 요청을 받았다고 과시하고 있다. 김정은은 납북자 문제로 몸이 달아있는 아베에게는 당분간 ‘곁을 주지 않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김정은의 머릿속에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결국은 서울의 참모들과 평양의 참모들의 지략 싸움이다. 결국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머리싸움이다. 시진핑은 평양엔 갔지만 서울엔 안 온다. 문재인·아베 정상회담은 일단 G20 오사카 일정에서 빠졌다.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에서 북한어선 ‘노크 귀순’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대북 유화 정책을 펴고 있는 문 대통령은 안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보수 유권자들이 감동할 만큼 확고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문 대통령은,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 문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힘과 지략이 부딪칠 뿐이다. 문 대통령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 수 싸움에서 김정은을 이기고 있는가, 지고 있는가. 답답하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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