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떠나며 쇠락한 도시… 난민에 러브콜 10년, 활력을 되찾다

조선일보
  • 버펄로(미국)=김향연 탐험대원
  • 취재 동행=권선미 기자
    입력 2019.06.20 03:01

    [청년 미래탐험대 100] [22] 난민에 두 팔 벌린 美 버펄로
    다름과 공존법 찾는 23세 탈북자 김향연씨

    얼마 전 찾은 미국 뉴욕주(州) 북서부 도시 버펄로의 소규모 시장(市場)인 웨스트사이드 바자(West Side Bazaar)는 여러 언어로 소란했다. 미얀마·이라크·남수단·르완다·스리랑카…. 가게마다 형형색색 국기가 내걸려 있었다. 시장 안 오밀조밀한 점포의 대부분은 난민들이 운영한다. 매니저 밥 도일씨는 "버펄로 주민과 관광객이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는 놀이터"라고 소개했다. 이 바자에서 난민은 3년 동안 저렴한 임차료만 내고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

    6월 20일은 유엔이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이 세상엔 1분마다 약 20명이 정치·종교·재난 등 이유로 살던 나라를 떠난다고 한다. 나의 부모님 역시 탈북민으로 20여 년 전 나를 데리고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 산 날이 더 많은데도 많은 이가 탈북민 출신이란 이유로 나를 외지인처럼 대한다. 지난해 예멘인 약 500명이 비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지위를 요청했을 때 여기저기서 나온 반감들을 보면서 나는 오랜 고민을 다시 떠올렸다. '다름을 포용하는 사회란 무엇일까.'

    버펄로 서쪽의 시장(市場) ‘웨스트사이드 바자’ 출입구. 내부에는 미얀마·남수단·르완다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난민들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버펄로 서쪽의 시장(市場) ‘웨스트사이드 바자’ 출입구. 내부에는 미얀마·남수단·르완다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난민들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김향연 탐험대원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난민에게 가장 화끈하게 열린 미국 도시로 꼽히는 버펄로로 향했다. 거제도보다 약간 많은 약 26만명이 사는 버펄로는 지난 10년 동안 1만2000명 넘는 난민을 받아들였다.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열렬히 난민을 유치했다. 이 중 다수가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길러 난민 수용으로 인한 인구 증가 효과는 더 크다. 김옥수 버펄로대 난민·이민자 연구소장은 말했다. "미국 제조업을 주도해 온 뉴욕·펜실베이니아주 등 5대호 인근 지역은 1900년대 중반부터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쇠락했습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녹슨 지역)'라고 불리지요. 버펄로도 사람들이 줄줄이 빠져나가 인구가 반 토막 났습니다. 경제 활동이 멈췄죠. 버펄로는 사활을 걸고 난민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버펄로시는 영어 교육, 저렴한 주택 제공, 일자리 연결 등 난민 정착 프로그램을 속속 강화하며 난민 친화 도시로 변신했다. 우선 도시 별명을 '좋은 이웃의 도시'로 정한 후 난민 정착 지원 사업에 대한 보조금도 늘렸다. 현재 버펄로에는 역할이 서로 다른 난민 지원 기관 4개가 운영 중이다. 난민에게 고용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제 버펄로 연구소, 주거·교육 등을 돕는 버펄로 유대인 가족 서비스, 육아·통역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여정의 종착점 난민 서비스', 난민에게 보호소를 제공하고 법적 도움을 주는 비베(VIVE) 등이다.

    난민 유입으로 내수 시장이 커지고 어느 정도 정착한 이들은 창업·개업 등 경제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라졌던 활기가 돌아올 조짐을 보였다. 텅 비었던 거리엔 난민들을 위한 이국적인 식당들이 들어섰다. 범죄 소굴이 됐던 빈 건물엔 전통 수공예품 등을 파는 다채로운 가게들이 입주했다.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 들어오는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하던 전구 회사 '라이트랩' 같은 지역 기업들은 비교적 인건비가 싼 난민을 채용해 오랜만에 사업 확장에 나서기도 했다.

    버펄로 난민 지원 기관 ‘여정의 종착점 난민 서비스’는 난민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친다. 한 해 300~400명의 난민이 이곳에서 육아·교육·통역 서비스 등을 지원받는다. 이 센터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버펄로 난민 지원 기관 ‘여정의 종착점 난민 서비스’는 난민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친다. 한 해 300~400명의 난민이 이곳에서 육아·교육·통역 서비스 등을 지원받는다. 이 센터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여정의 종착점 난민 서비스’ 페이스북

    난민으로 부활을 꾀하던 버펄로는 트럼프 대통령(2017년 취임)의 이민자 억제 정책에 직격탄을 맞았다. 매년 1000명 넘게 유입되던 난민이 2018년에 약 580명으로 줄었다. 버펄로시는 지난해 새 전략을 세웠다. 일단 줄어든 연방 정부의 난민 정착 지원금은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아울러 미국으로 난민이 전만큼 못 들어오게 하니, 미국에 이미 입국해 다른 지역에 정착한 난민이라도 적극적으로 '스카우트'하자는 작전을 수립했다. 버펄로시가 만든 동영상엔 난민을 향한 버펄로시의 화끈한 '러브콜'이 담겼다. "이제 막 도착하신 분들, 여기로 오십시오. 귀하게 모시겠습니다!"(바이런 브라운 버펄로 시장)

    많은 한국인은 난민이 늘어나면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범죄가 증가할까 걱정이라 한다. 하지만 난민 유입으로 인구가 불어난 버펄로시의 일자리는 2009~2015년에 1100개(8.7%)가 늘었다. 사업체 수는 6.3%가 증가했다. 주변의 다른 도시(일자리 4%, 기업 1.3% 증가)보다 경제 상황이 좋다. 뉴아메리카 경제 연구소 분석 결과, 난민을 많이 받은 10개 도시 중 9개 도시의 범죄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버펄로에서 태어나 37년을 살았다는 브렌다 루이스씨는 "미국은 원래부터 난민의 나라였다"고 말했다. "쌍둥이조차 성격이 제각각이잖아요. 사람은 원래 다 다릅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매력 아닙니까."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난민과 상생하는 이들처럼… 다름 포용하는 사회 됐으면"

    김향연씨

    평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는 스물세 살 김향연〈사진〉입니다. 지난해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 약 500명이 난민 신청을 하자 전국적인 논란으로 번지는 일을 목격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현명하게 포용하는 방법은 없을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진 미국 버펄로를 탐험지로 정했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도 난민은 정답이 없는 까다로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단순히 난민을 '받아들일지 내보낼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어떻게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과 단체가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겐 '다름'이란 적대적인 대상이 아닌 존중하고 인정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도 다름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길 꿈꿉니다. 저도 보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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