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따라 간호사도 서울로… 지방 의료진 씨가 마른다

입력 2019.06.20 03:01

['문재인 케어' 2년] 지방 중소병원은 입원실 텅텅 비어… 의사 월급 제때 못주는 곳도
의사협회 "지방 상황, 文케어로 시속 10㎞서 시속 90㎞로 악화"

제주도에 사는 김모(61)씨는 지난달 2일 항암 치료받으러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비행기를 놓쳤다. 김씨는 매달 한 번씩 병원에 올 때마다 외래 진료 시간을 7~8시간씩 잡고 여유 있게 비행기표를 끊는데, 진료 순서가 밀려 비행기를 못 탔다. 결국 두 배 비싼 가격에 더 늦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김씨는 19일 오후 2시에도 이 병원 복도에서 다른 대기 환자 20여 명 사이에 끼여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가 다니는 병원은 이른바 '빅5' 병원(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중 한 곳이다. 이 병원들마다 하루 1만명 안팎 환자가 몰려 북새통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현상"이라면서 "박리다매 수익 구조로 대학병원도 지치고 환자도 불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방 중소 병원에선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최근 인천 외곽에 있는 한 종합병원 정형외과 의사 한 명이 자기가 근무하던 병원을 지방노동위에 제소했다. 4개월간 밀린 급여 7000만원을 빨리 달라는 내용이었다. 병원 측은 "환자 감소로 3년 연속 병원 매출이 줄어 직원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케어 관련 그래프

지난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전국 병원 폐업 건수가 개업 건수를 앞질렀다. 2014년의 경우 문 여는 병원(147개)이 문 닫는 병원(124개)보다 많았는데, 지난해 문 닫는 병원(122개)이 문 여는 병원(121개)을 앞지른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문재인 케어 도입으로 '환자 쏠림'과 '의료진 쏠림' 현상이 겹쳐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년간 정부는 건강보험 혜택을 대폭 늘려 병원 문턱을 낮췄다.

이후 상급 종합병원들은 밀려오는 환자를 맞느라, 경쟁적으로 의료 인력을 늘리고 있다. 빅5 병원 간호사 수는 2014년 1만137명에서 지난달 1만4145명으로 5년 새 40%나 늘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의료진 사이에 '굳이 지방에 가느니 서울 대형 병원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겠다'는 의식이 퍼지면서 인력난이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지방 중소 병원은 환자도 뺏기고 의료진도 뺏기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실제로 취재팀이 지난 17일 찾아간 인천의 다른 병원은 간호사가 부족해 별관 건물 중 한 층을 통째로 놀리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입원 장비는 모두 갖췄는데, 그걸 운용할 간호사가 없다"며 "80여 개 병상이 비어 있다"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환자 수는 병원 규모를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병원에 고르게 늘어난 게 아니라 큰 병원일수록 환자가 더 늘었다. 최근 5년간(7~12월 기준) 전체 상급 종합병원 환자 수가 229만명 늘어났는데, 이 중 81만명이 빅5 병원에 몰렸다.

그 직격탄을 맞은 게 지방 중소 병원들이다. 정영호 대한중소병원협회장은 "예전에는 (금전적) 여유가 있거나 중병이 있는 환자는 상급 종합병원에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종합병원이나 병원으로 간다는 나름의 공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너나없이 상급 종합병원으로 몰려간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것도 중소 병원에 악영향을 미쳤다. 한 중소 병원장은 "최저임금이 오르고 주 52시간제까지 도입돼 지난해 10월부터 월 1억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상운 의사협회 부회장은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뒤, 시속 10㎞로 나빠지던 중소 병원 상황이 80~90㎞로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공단은 19일 문재인 케어 2주년을 맞아 "국민 53.9%가 잘한다고 본다"고 발표했다. 지난 4~10일 19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에게 전화 설문한 결과다. 건보공단은 이날 "국민이 현재 수준 이상으로 건강보험 및 보건 의료 분야의 정부 지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지만, 문재인 케어로 인한 부작용을 언급하거나 재정 대책을 내놓진 않았다.

☞문재인 케어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건보 보장률을 2016년 63%에서 2022년 7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MRI(자기공명영상장치), 병실료(2~3인실) 등까지 건보 혜택을 대폭 확대했다. 큰 병원에 갈 때 추가 비용을 내던 ‘선택진료제’도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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