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케어 2년, 중소병원이 쓰러진다

조선일보
입력 2019.06.20 01:39 | 수정 2019.06.20 05:09

건보적용 늘고 선택진료비 폐지, 환자들 서울 대형병원에 몰려
'빅5 병원' 환자 작년 65만명 급증… 중소병원 폐업, 개업 첫 추월

19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A 종합병원은 대형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접수·등록 창구 앞에 번호표를 뽑은 사람이 수십 명씩 대기하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가 "하루 평균 9000~1만명이 몰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전 찾아간 인천 B 종합병원 풍경은 정반대였다. 별관 건물 중 한 층은 아예 층 전체가 불이 꺼져 있었다. 병원 관계자가 "재단 이사진은 오늘 오전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병원 문을 닫아야 할지 논의했다"고 했다.

서울 대형병원은 환자들 북새통 -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A종합병원 본관 접수·등록 창구 앞에 번호표를 뽑은 사람이 수십명씩 대기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병원을 찾는 외래 환자만 하루 평균 9000~1만명에 이른다.
서울 대형병원은 환자들 북새통 -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A종합병원 본관 접수·등록 창구 앞에 번호표를 뽑은 사람이 수십명씩 대기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병원을 찾는 외래 환자만 하루 평균 9000~1만명에 이른다. /오종찬 기자
정부가 '문재인 케어'를 내건 지 2년 만에 병원 양극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소위 '빅 5'(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병원의 시장점유율은 8.5%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 병원들의 환자 수는 730만명으로 전년보다 65만명이나 늘었다. 또 전국 42개 상급 종합병원의 지난해 진료비는 2016년에 비해 33.5% 증가했다. 반면 100병상 내외의 중소 병원은 처음으로 지난해 폐업 건수가 개업 건수를 넘어섰다.

현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통해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큰 병원에서 받던 '선택진료비'를 없애, 작은 병원에 가나 큰 병원에 가나 환자 개인이 내는 돈은 큰 차이 없게 만들었다. 그러자 환자들이 너도나도 서울 대형 병원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소병원 입원실엔 의료장비만 가득 - 지난 17일 오후 인천 외곽에 있는 B종합병원의 별관 한 층 입원실에 사용한 적 없는 침상, 링거 걸이 등이 방치돼 있다. 병원 관계자는 “입원실 운영을 위한 장비는 모두 갖췄는데, 그걸 운용할 간호사가 없다”며 “80여개 병상이 비어 있다”고 했다.
중소병원 입원실엔 의료장비만 가득 - 지난 17일 오후 인천 외곽에 있는 B종합병원의 별관 한 층 입원실에 사용한 적 없는 침상, 링거 걸이 등이 방치돼 있다. 병원 관계자는 “입원실 운영을 위한 장비는 모두 갖췄는데, 그걸 운용할 간호사가 없다”며 “80여개 병상이 비어 있다”고 했다. /허상우 기자

최근에는 환자 쏠림을 넘어 '의료 인력 쏠림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환자가 빅 5 병원을 포함한 상급 대형 병원으로 몰리면서, 상급 종합병원들이 경쟁적으로 의료 인력을 늘리고 있어서다. 인천 B 종합병원 관계자는 "우리 같은 병원은 환자와 간호사 둘 다 씨가 마르고 있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는 "병이 얼마나 중하냐에 따라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 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3단계 의료 전달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영호 대한중소병원협회장은 "일반 병원에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환자가 종합병원을 찾고, 종합병원 가야 할 환자는 다시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을 찾는 식으로 환자들이 줄줄이 이동하고 있다"며 "일종의 환자 이동 도미노"라고 했다.

임구일 전 경희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이대로 가면 중소 병원 폐업으로 의료 전달 체계가 붕괴하고, 한편으론 중증 희소 질환을 중점적으로 봐야 할 상급 종합병원이 경증 환자들에게 치여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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