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정부 요구에 따른 여름철 전기료 인하가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背任)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지를 법무법인에 질의했다. 한전 소액 주주들이 탈원전, 전기료 인하 같은 일련의 포퓰리즘 정책 탓에 한전 경영이 부실화됐다며 경영진을 배임죄로 고발하겠다고 하는 데 대한 자구책이다. 한전 이사회가 정부 요구대로 전기료 인하안을 의결할 경우 매년 3000여억원의 추가 손실이 생겨 이사들이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안전 장치로 법무법인의 유권해석을 받아두겠다는 것이다.
한전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지분 51%를 가진 공기업이지만 동시에 외국인·소액 주주 지분도 49%나 된다. 42만여명 소액 주주가 투자한 상장 기업인데도 정부가 정책 편의를 위해 마음대로 휘젓는 바람에 경영이 엉망이 됐다. 2016년 순이익이 12조원에 달하던 우량 기업이 탈원전 2년 만인 지난해 1조여원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 들어선 적자 규모가 더 커졌다. 2016년 6만36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2만5000원 수준으로 반 토막이 났다. 정부가 탈원전을 비롯한 비합리적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그 부담을 한전에 떠넘겼기 때문이다.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갖고 온갖 선심을 쓰지만 결코 공짜는 아니다. 여름철 에어컨을 마음껏 쓰도록 전기료를 깎아주겠다고 했지만 그 부담은 결국 한전 적자와 수십만 주주들의 투자 손실로 돌아갔다.
법적 책임 공포에 시달리는 것은 한전뿐 아니다. 지난해 6월 한국수력원자력은 정부 방침에 따라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임원들을 손해배상 책임보험에 가입시킨 일도 있었다. 경제 논리를 팽개친 탈원전 폭주가 원전 생태계를 무너트리고 에너지 공기업 경영진을 배임과 손해배상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탈원전 행보가 계속될수록 주주들 울분은 더 커지고 경영진의 로펌행 발길이 더 잦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