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않고도… 프랑스에선 다양한 '신개념 가족'이 태어납니다

조선일보
  • 파리=홍윤하 탐험대원
  • 취재 동행=이해인 기자
    입력 2019.06.18 03:53 | 수정 2019.06.20 11:40

    [청년 미래탐험대 100] [21] 저출산·고령화시대 '가족 혁명'
    결혼서 해방 되고픈 29세 직장인 홍윤하씨

    프랑스는 한때 1.5명까지 떨어졌던 합계 출산율을 지난해 1.9명까지 끌어올렸다. 유럽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반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에 올라 있다. 20대 후반인 나는 가족·친척·친구로부터 '결혼 공해'에 시달린다. "결혼 안 해?" "결혼해야 하는데" "결혼 더 늦으면 안 되는데"…. 결혼, 결혼, 결혼! 마치 결혼을 안 하면 큰일 날 듯한 분위기에 숨이 막힌다는 친구도 적지 않다. 프랑스는 1999년 결혼이라는 법적 '접착제'가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차별받지 않는 팍스(PACs·시민연대계약)를 도입했는데, 이처럼 보다 느슨한 가족 결합 제도가 출산율 상승을 도왔다는 의견이 많다. 이혼과 달리 팍스로 맺어진 커플은 서류 한 장 제출하면 쉽게 갈라설 수 있다. 팍스뿐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선 노인과 청년, 한 가족과 노인, 여성과 여성처럼 다양한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가족 공동체 탄생의 현장, 프랑스인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자녀 낳은 팍스 가족 - 결혼하지 않아도 국가로부터 동일한 세금·복지 혜택을 받는 제도권 동거 제도 팍스를 통해 아들 아르튀르(맨 왼쪽)와 딸 마고를 낳아 기르는 앙투안(맨 위)·비르지니 커플.
    자녀 낳은 팍스 가족 - 결혼하지 않아도 국가로부터 동일한 세금·복지 혜택을 받는 제도권 동거 제도 팍스를 통해 아들 아르튀르(맨 왼쪽)와 딸 마고를 낳아 기르는 앙투안(맨 위)·비르지니 커플. /이해인 기자

    ①팍스로 아이 양육 앙투안(33)+비르지니(38)

    "11년 전 이 사람을 만났어요.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죠. 동거를 하며 아들 아르튀르(6)를 낳았어요. 말괄량이 딸 마고(4)를 낳을 때쯤 팍스를 맺었죠. 팍스를 하면 세금 혜택이 있기 때문에 그냥 동거하는 것보단 유리하거든요. 언제냐고요? (이 커플은 한동안 팍스를 언제 맺었는지를 기억해낸다고 토론을 했다.) 아이고, 기억이 안 나네요. 그게 중요한가요, 하하. 두 사람의 관계가 확고하다면 굳이 결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동거·팍스·결혼,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든 아이는 자라는 데 있어서 사회로부터 어떤 차별도 받지 않아요."

    ②결혼 않고 동거하는 클로에(28)+존(33)

    동거하며 출산 계획 커플 - 7년간 연애, 지난해부터 동거 중인 클로에(왼쪽)와 남자친구 존.
    동거하며 출산 계획 커플 - 7년간 연애, 지난해부터 동거 중인 클로에(왼쪽)와 남자친구 존. /클로에 노터이으
    "8년 전 만난 남자친구와 지난해 파리 인근에 방 하나 딸린 아파트를 얻어서 같이 살고 있어요. 7년을 알고 지냈는데 내가 알던 그 남자가 아니더군요, 하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요. 양말을 어떻게 벗어던지는지, 잠버릇은 고약하지 않은지 관찰하고 있죠. 평생을 함께 살 사람이잖아요. 올해 우리는 아이를 가질 계획이에요. 파리 인근에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새로 계약했어요. 그래도 결혼할 생각은 없습니다. 예쁜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중요하지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 자체가 뭐가 중요한가요. 결혼식 할 돈으로 차라리 차를 사는 게 낫겠어요."

    ③동성끼리 팍스한 줄리(29)+소피(25)

    팍스로 이어진 동성커플 - 지난해 3월 브라질 체류 비자를 위해 팍스를 맺은 여·여 커플 줄리(왼쪽)·소피.
    팍스로 이어진 동성커플 - 지난해 3월 브라질 체류 비자를 위해 팍스를 맺은 여·여 커플 줄리(왼쪽)·소피. /줄리 바스텐
    "파리교통공단(RATP)에서 일하고 있어요. 2년 반 전 데이팅 앱을 통해 학생이던 소피를 만났어요. 우리는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 팍스를 맺었어요. 소피가 브라질에 공부하러 갔는데 팍스를 하면 가족으로 인정받아 브라질 체류 비자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우리는 아이도 기를 거예요. 프랑스 학교에서는 엄마, 아빠라는 표현 대신 '부모 1' '부모 2'라는 표현을 써요. 동성 커플을 배려하는 차원이죠. 팍스인 상태에서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엔 '내 아이'가 되고 '우리 아이'는 되지 않아요. 우리의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결혼을 할 계획도 있습니다."

    ④청년·할머니가 가족이 된 잔(77)+요안(28)

    '한식구'가 된 독거노인·청년 - 지난해 5월부터 2층짜리 단독주택에 함께 살고 있는 잔(왼쪽) 할머니와 요안.
    '한식구'가 된 독거노인·청년 - 지난해 5월부터 2층짜리 단독주택에 함께 살고 있는 잔(왼쪽) 할머니와 요안. /이해인 기자
    "자식 출가시키고 2년 전 남편까지 먼저 보낸 뒤로 이 집이 제겐 너무 커졌어요. 방 다섯 개짜리 2층 단독주택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지역 신문에서 남는 방을 청년들에게 양보하라는 광고를 봤어요.(프랑스에는 큰 집에 홀로 사는 어르신과 가족을 연결해주는 기관이 발달돼 있다.) 요안에게 받는 월 370유로(약 49만원)가 큰돈은 아니지만 호기심이 생겼죠. 그렇게 지난해 5월부터 요안과 함께 살고 있어요. 일이 없으면 대부분의 저녁 시간을 요안과 함께 보내죠. 가장 좋은 건 친구가 생겼다는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사람이란 뜻이죠."

    ⑤대가족·어르신 세 명 결합한 두아양(63)네 가족+클레흐(91)+조르젯(88)+조지안(88)

    남의 집서 한가족처럼 사는 노인 3명 - 두아양(맨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과 딸 갸랑스, 아들 매티스와 한집에 살고 있는 클레흐·조르젯·조지안 할머니.
    남의 집서 한가족처럼 사는 노인 3명 - 두아양(맨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과 딸 갸랑스, 아들 매티스와 한집에 살고 있는 클레흐·조르젯·조지안 할머니. /두아양 헤몽
    "인연을 맺은 건 2년 반 전입니다. 원래 아들과 함께 살았지만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노인과 가정을 연결해주는 협회 사이트에서 간호조무사 출신인 두아양씨네를 알게 됐죠. 옆방 클레흐는 넉 달 전 이곳에 들어왔어요. 저는 뜨개질을 하면서, 비서로 일했던 그녀는 요즘에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답니다. 건넌방에 지내는 조지안은 왼쪽이 마비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죠. 나는 두아양에게 간병·식사 비용 등을 포함해 매월 2400유로 정도를 내요.(두아양은 "프랑스 지방정부는 노인의 독립도와 건강 상태에 따라 최대 1700유로 정도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 합니다. 청소년인 두아양씨 아들·딸도 같이요. 한 지붕에 사는 우리를 뭐라고 부르냐고요? 누가 봐도 '파미에(famille·가족)'죠!"

    ⑥동거하다 결혼한 미카엘(42)+안(31)

    동거후 결혼 - 4년간 동거 후 4년 전 결혼한 안(왼쪽)과 남편 미카엘.
    동거후 결혼 - 4년간 동거 후 4년 전 결혼한 안(왼쪽)과 남편 미카엘. /이해인 기자

    "8년 전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했어요. 동거한 지 4년쯤 지났을까. 미카엘이 결혼하자더군요. 신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서 팍스는 선택지가 아니었어요. 팍스와 달리 결혼을 선택하는 커플들은 대부분 성당에서 경건한 결혼식을 올려요. 결혼엔 다소 종교적인 무게감이 있죠. 친구와 가족들 앞에서 사랑을 서약하기 때문에 팍스보다 단단한 관계라고 믿어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우리가 단순 동거 커플인지 팍스인지 결혼인지 별 관심이 없어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맞춤 가족' 꾸리게 돕는 佛정부의 노력 인상적

    홍윤하씨

    한국에선 '결혼 적령기'라는 뭔지 모를 잣대 때문에 귀찮은 일을 많이 겪게 됩니다. 이런 현실이 너무나 피곤한 스물아홉 살 직장인 홍윤하〈사진〉입니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찾아 일주일 동안 탐험하고 돌아온 프랑스는 많이 달랐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법적 결합'이라는 전통적 결혼 제도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 형태의 가정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정부 역시 이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맞춤형 정책을 제공하는 데 열심이었고요.

    한국에선 결혼이란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혼자가 당연히 누리는 혜택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세금 혜택도 적고 복지도 불리합니다. 미래 대한민국은 누구와 어떻게 가정을 꾸리든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이길 희망합니다.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팍스(PACs·시민연대계약)

    프랑스가 동성 커플에게도 법적인 지위를 인정하기 위해 1999년 도입한 제도. 세액 공제 등 결혼 부부와 동일한 수준의 혜택을 보장받는다. 계약을 맺고 해지할 때 법적으로 기록이 남지 않는다. 이성 커플의 호응도 커 2001년 1만6589건이었던 팍스 커플 수는 2017년 19만3950건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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