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권때 좌천, 朴정권 수사하며 부활… 고검장 건너뛰고 총장 직행

조선일보
입력 2019.06.18 03:27

[윤석열 검찰총장 지명]
윤석열, 원세훈 수사때 상관 외압 폭로… '최순실 특검' 합류로 재기

"내 관운(官運)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박근혜 정권 출범 초기인 2013년 4월 당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가까운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임명된 직후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까지는 '잘나가는' 검사였다. 특수 수사를 전담하는 대검 중수부 1·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냈다.

그는 두 차례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겨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대검 중수부 연구관으로 노무현·이회창 캠프 대선 자금 수사에 참여했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지휘한 이 수사는 국민적 성원을 받았다. 두 번째 수사가 '국정원 댓글' 수사였다. 그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는 법무부와 갈등을 빚다 국정감사에서 상관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의 사건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그 일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한직인 고검으로 좌천돼 약 3년간 고검을 전전했다. 댓글 수사팀장에 임명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이다.

작년 현충원 참배 때… 앞에 줄줄이 선배들 - 1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윤석열(왼쪽에서 첫째) 서울중앙지검장을 내정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월 윤 후보자가 문무일(오른쪽에서 첫째) 검찰총장과 봉욱(오른쪽에서 둘째) 대검차장 등 검찰 수뇌부와 함께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치고 이동하는 모습.
작년 현충원 참배 때… 앞에 줄줄이 선배들 - 1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윤석열(왼쪽에서 첫째) 서울중앙지검장을 내정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월 윤 후보자가 문무일(오른쪽에서 첫째) 검찰총장과 봉욱(오른쪽에서 둘째) 대검차장 등 검찰 수뇌부와 함께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치고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를 수사 일선으로 복귀시킨 건 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였다. 평소 그를 아끼던 박영수 특검이 그를 수사팀장에 앉혔다. 특검팀 합류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한풀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검사가 수사권을 가지고 보복을 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고, 결과적으로 그 수사는 검찰로 이어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현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적으로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원래 고검장급이던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낮추면서까지 그를 그 자리에 앉혔다. 파격 인사였다. 그는 이후 2년간 현 정부가 국정 과제 1호로 내세운 '적폐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전(前)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사실상의 하명(下命) 수사였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전 검사는 검찰 수사에 반발해 2017년 11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윤 후보자와 사법연수원 동기(23기)였다. 그와 연수원 동기인 한 변호사는 "평소 나이 많은 윤 후보자를 형이라 부르면서 따르던 동기 검사들이 꽤 있었는데 이 사건 이후 동기들과 윤 후보자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그를 총장 후보로 지명한 것도 파격이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고검장을 거치지 않은 지검장이 총장이 되는 건 처음이다. 청와대는 2017년 고검장급이 맡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윤 지검장을 임명하면서 "고검장은 총장 후보군에 오르기 때문에 인사권자인 대통령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사가 왜곡되는 사례가 있어 이를 바로잡는 차원"이라고 했다. 그래 놓고 이번에 윤 지검장을 바로 총장에 지명했다. 여기엔 '적폐 수사'를 계속 이어가라는 문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으로 법조계에선 받아들이고 있다.

윤 후보자는 '검찰 중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의 '외압 의혹'을 폭로하던 국감장에서도 "(검찰을) 대단히 사랑한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현 정부와 여당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 조직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윤 후보자 성향 때문에 그를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하는 것이 정권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검찰을 우선하는 사람은 "수사는 법률가인 검사가 지휘해 최종 마무리해야 한다"는 검찰 주류의 생각에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였다.

윤 후보자는 검찰 개혁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사석에선 '온건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검찰 개혁안이 검찰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면서도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현재 법안이 통과되면 '무죄율'이 높아진다. 법정으로 가는 사건 수가 많아져 국민의 소송 비용 부담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반(反)민주적'이라고 했던 문무일 검찰총장보다 반대 수위가 상당히 낮다. 현 정권도 그의 이런 입장을 알고 그를 지명했다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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