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들을 문(聞)'을 모르는 정부

입력 2019.06.18 03:14

성호철 산업2부 차장
성호철 산업2부 차장

우리나라 법무부에 해당하는 일본 법무성의 야마시타 다카시(山下貴司) 대신(장관)은 올해 총 41회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매주 1~2차례씩 빠짐없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정례 회견(定例會見)'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자의 질문과 야마시타 장관의 답변은 텍스트 형태로 법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선 "전쟁을 하지 않으면 북방 영토를 찾을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마루야마 국회의원(중의원)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민감할 수도 있지만 야마시타 장관은 "정부의 방침과 다른, 명백하게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다른 부처 장관들도 이런 정례 기자회견을 갖는다. 일본 총무성의 이시다 마사토시(石田眞敏) 장관은 올해 46차례나 기자회견했고, 질의응답한 내용은 텍스트는 물론이고 동영상도 공개한다. 일본 내각부의 서열 2위이자 대변인 역할을 하는 스가 관방장관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무려 200회 이상 기자회견을 가졌다. 따로 정부 발표가 없을 때도 매일 두 차례씩 마이크 앞에 서서 기자의 질문을 기다린다. 아베 총리도 외국 정상과 공동 기자회견을 합쳐 8차례 기자들 앞에 섰다. 2주 전 해외 출장에서 만난 일본 일간지의 한 기자는 "장관들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국민은 질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일이 새롭게 보이는 이유는 지난 12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기자회견 탓이다. 박 장관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 기자회견을 하면서 "기자단 질문을 안 받겠다"고 밝혔다가 기자단이 반발해 브리핑에 불참했다. 결국 '기자 없는 기자회견'이라는 코미디가 됐다.

불편한 질문이 나올까 봐 기자 질문을 거부한 박 장관의 태도는 이번 정부의 대(對)언론관을 보여주는 단면일지 모른다. 당장 한 달 전 이낙연 국무총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신문'의 정의가 그렇다. 그는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聞)'자다. 그러나 많은 기자는 '물을 문(問)'자로 잘못 안다. 그게 아니다. 동사로서의 '신문'은 새롭게 듣는 일이다"라고 썼다. 기자 출신 이 총리가 신문의 정의를 멋대로 바꾸면서까지 "기자 업무는 '취재원의 말을 다소곳하게 잘 듣는 일'이니 불편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훈계한 것은 역사에 남을 황당 발언이다.

일본어에서는 '문(聞)'이라는 한자가 '듣는다'와 함께 '질문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이번 정부의 해석대로라면 일본의 신문은 '새로운 걸 묻는 매체'고, 한국의 신문은 '듣기만 하는 매체'라는 뜻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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