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AI가 우리 반도체에 준 절호의 기회

조선일보
  •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입력 2019.06.17 03:11

한국 반도체… '메모리'는 세계 최강, '시스템'은 글로벌 기업에 뒤져
인공지능 반도체는 메모리 중심으로 시스템을 통합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초지능' '초연결'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 핵심적인 기술을 ABC로 상징적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A는 '인공지능'을 표현하는 AI, B는 '빅데이터', C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상징한다. 다르게 설명하면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로 학습해서 인간의 두뇌보다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정확하게 판단하고 예측하게 되고, 결국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가 대체하는 세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빅데이터를 저장하고, 인공지능으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부품이 바로 '프로세서'와 '메모리'로 대표되는 반도체이다. 반도체가 없으면 인공지능도 없고 4차 산업혁명도 없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 인공지능 반도체로 승부하라

최근 정부는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시스템 반도체(프로세서 포함)'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 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더해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 계획을 선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이미 기존의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프로세서 분야만 하더라도 인텔, 퀄컴, 엔비디아, AMD, ARM의 벽을 넘기는 어렵다. 판을 뒤엎기는 쉽지 않다.

다만 스마트폰과 자율주행 자동차에 무수히 들어갈 이미지 센서 분야가 유망하다. 공정도 메모리와 같이 3차원 구조를 갖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반도체 공정 서비스인 파운드리 사업에서 대만 TSMC의 점유율을 파고들어 대등한 경쟁을 할 수도 있다. 그 결과로 관련 재료와 장비 산업이 동반 성장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좀 더 원천적이면서 혁신적인 육성 방안이 필요하다.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이 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인공지능 반도체'가 바로 그 절호의 기회이다. 인공지능 반도체는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가 한 몸으로 합쳐진 반도체이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은 연평균 40%씩 성장, 2025년에는 493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에게 다행인 것은 인공지능에는 프로세서보다 메모리 기술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중심이라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많이 저장하고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반도체를 만들려면 신물질, 신공정, 그리고 새로운 구조가 필요한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그동안 메모리 사업에서 축적한 설계, 재료, 공정, 장비 기술뿐만 아니라 우수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의 개발 방향

인공지능을 대표하는 알고리즘은 심층신경망(DNN·Deep Neural Network)이다.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와 같은 방식의 알고리즘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학적으로 수많은 행렬 곱셈 작업과 병렬 연산 과정을 수행해야 하고, 이와 동시에 계산 결과를 빠른 속도로 메모리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인공지능 성능이 결정되고 대부분의 전력 소모가 발생한다. 따라서 계산 속도가 빛의 속도처럼 빠르고, 동시에 전력 소모가 최소화하는 미래의 인공지능 반도체에서는 구조 병렬화의 극단적 증대와 메모리의 최대 근접화가 핵심 개발 방향이다. 이를 위한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은 단기·중기·장기 세 단계로 나눠 추진해야 한다.

먼저 기존의 프로세서 내부 구조에서 병렬화를 증대하고, 프로세서 내부에 자체 메모리 용량을 늘리거나, 같은 데이터를 재사용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또는 계산의 정확성을 조금 희생하면서 계산 부담을 줄이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을 스마트폰 단말기 내의 프로세서인 AP (Application Processor)에 적용해서 인공지능 기능과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반도체 구조를 인공지능 가속기라고 부른다(그림). 삼성전자, 퀄컴, 화웨이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다음 단계로는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를 마치 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짓고, 고속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처럼, 수직 방향으로 쌓는 방법이다. 그러면 계산 속도와 메모리 용량을 대폭 늘리고, 동시에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인다. HBM(High Bandwidth Memory) 모듈 구조로 불리며(그림), 주로 데이터 센터의 인공지능 컴퓨팅 서버에 사용될 수 있다.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 분야이다.

마지막 단계의 방법은 아예 인간의 뇌 자체를 모방한 신경망을 물리적으로 반도체 표면에 회로로 구현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한 개의 신경회로에 계산 기능과 메모리 기능이 같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인공지능 반도체를 뉴로모픽 칩(Neuromorphic Chip)이라고 부른다. 이를 위해서는 저항성 메모리와 같은 새로운 소자가 필요하다. 재료와 공정을 개발하고, 충분한 수율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의 연구 개발과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시대를 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인공지능 반도체이다. 특히 '초격차' 메모리 기술을 갖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미래에 가장 큰 전략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1980년대에 삼성전자가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시작했고, 그 이후 불굴의 노력으로 성공 신화를 창조했다. 이제 인공지능 반도체로 제2의 성공 신화를 다시 한 번 더 만들 수 있다. 통찰력에 기반한 정밀한 방향 설정과 우리의 확고한 추진 의지가 성공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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