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젊은 의사들과 함께, 환자를 위하는 길로 나아가면 될 것 같아요"

입력 2019.06.17 03:00

[100세 시대 길을 묻다] 용인 예스병원 김인권 병원장

비 오는 날, 충남 아산의 자택에서 만난 예스병원 김인권 병원장. 여수와 용인의 중간쯤인 충남 아산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은 '너무 멀리 가기에는 옛 환자들에게 미안해서'라고 했다.
비 오는 날, 충남 아산의 자택에서 만난 예스병원 김인권 병원장. 여수와 용인의 중간쯤인 충남 아산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은 "너무 멀리 가기에는 옛 환자들에게 미안해서"라고 했다.
'인공 관절', '무릎 수술'을 검색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이름 석 자가 있다. 명의 김인권. 그동안 전국의 무릎 아픈 어르신을 여수에서도 한참 외진 곳에 있는 여수애양병원으로 가게 하는 이름이었다. 그가 정년퇴임한 2016년 이후에는 "김인권 원장님, 아직도 수술 하시나요?"라는 질문이 관련 커뮤니티마다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이었다. 그는 지난 2월말까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명예원장'이라는 직함이 무색할 정도로 수술 방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의 관절을 치료했다.

6월부터 용인의 예스병원에서 진료를 하기 시작한 김인권 병원장은 4월 말부터 충남 아산의 시골로 짐을 세 번 옮겼다. 그도 그럴 것이 애양병원에 부임하며, 남쪽에 자리를 잡은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 하는 이사였다. 짐 정리만 2주 이상 걸렸다고 했다. 두 부부가 사는 아담한 집 거실은 단출했다. 소파도, TV도 없고, 편안한 의자 두 개가 커다란 유리창을 마주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마당에 몇 개의 돌이 둥그렇게 놓여 있었고, 한 켠에는 돌절구가 있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다미안 신부 등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김인권 병원장이 명의로 불리는 건 단순히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한때는 한센병 환자, 또 한때는 소아마비 환자들이 그의 주 환자들이었다. 그는 1977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6개월 동안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파견 근무를 했고, 1980년 공중보건의가 되어 다시 소록도를 찾았다. 이때는 아내와 생후 60일 된 딸까지 함께였다. 1983년 5월 제대 후 국내 최초 한센병 치료기관인 애양병원의 정형외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곳보다는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곳"을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뚝심 있게 환자만 살피던 그는 2016년에 65세 정년을 맞이했다. 근무기간 33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명예원장으로 만 3년을 더 지냈다.

Q: 왜 충남 아산에 터를 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2016년 정년퇴임 후 환자들과 병원 때문에 못 떠났어요. 언젠가는 옮겨야 하는데,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어차피 옮길 거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자고요. 또 너무 멀리 가기는 미안해서 중간에 자리를 잡았어요. 이렇게 결심하고 옮기고 그러는 과정이 참 무서웠는데, 막상 옮기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제가 또 적응을 잘 해요.

Q: 떠나실 때 그곳에 있는 환자들이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아요.

-소아마비는 80년대 중반부터 많이 없어져서 그때부터 인공관절 수술을 많이 했어요. 인공관절은 젊은 의사들도 참 잘해요. 하지만 인공관절이 망가져서 하는 재치환 수술은 쉽지 않거든요. 그런 환자들도 떠나지 말라고 했는데... 그리고 몇 남지 않은 한센병, 소아마비를 앓은 내 오랜 친구들은 다른 의사들이 잘 보려고 하지 않아요. 그 환자들이 제가 떠나는 걸 좀 섭섭해 하기는 했죠. 그래서 예스병원 원장들에게도 이야기해놓았어요. 이 환자들이 찾아오면 외래 시간이든 아니든 언제든지 진료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Q: 환자들의 몸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맞아요. 현대사회에서 의사가 너무 직업이 됐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인데 말이죠. 환자들이 진료실에 들어올 때는 움츠러들어서 와요. 긴장해서요. 의사는 주인처럼 굴고요. 그래서 의사가 서서 진료를 하자고 했어요. 환자의 위치에서 생각해보자고요. 진료실과 수술방을 여러 개 만들어서 제가 돌아다녔죠. 그래야 환자들도 더 많이 볼 수 있거든요.

Q: 용인의 예스병원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 이 나이에 나를 좋다고 오라고 그러는 데가 어디 있겠어요? (웃음) 그리고 젊은 원장들이 있는 병원인데 참 열심히 해요. 활기가 있고, 그들이 가진 성의와 열의가 좋았어요.

분명 수술 후에도 아픈 환자가 있어요. 100프로 잘되는 거 아니거든요. 의사들은 수술이 잘 됐는데 환자들이 아프다고 하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겠죠. 그런데 예스병원 이길용 원장이 그러는 거예요. 그런 부분을 해결해줘야겠다는 것이죠. 환자가 만족할 때까지. 상당히 건실하고 괜찮은 생각인 거지. 늙은 사람들이 젊은이들 보고 '왜 저러나' 그러는데, 제가 보기에는 젊은 사람들이 훨씬 나아요. 사건에 대한 접근이 더 훌륭해요. 예전에는 먹고 살기 바빠서 놓쳤던 인격적인 부분들을 잘 살필 줄 알아요.
꽃과 나무도 정성 들여 돌보는 김인권 병원장. 이 외진 곳의 집에도 언제나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꽃과 나무도 정성 들여 돌보는 김인권 병원장. 이 외진 곳의 집에도 언제나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Q: 망치, 플라스틱 판 등 수술 장비도 새로 고안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료 기술도 정말 많이 발전을 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새 병원으로 옮기면서 기대하는 바는 없을까요?

-사실 전 보수적인 편이에요. 100개의 새로운 의료 기술이 개발되면 그것이 정말로 유용하다고 판명되는 것은 10개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인공관절도 무수히 많이 발명됐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얼마 되지 않거든요. 제 신념 중 하나는 검증된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에요.

Q: 의료 과정은 물론 병원을 운영하시면서도 수많은 판단을 하셨어야 했을 텐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고 김옥길 이대 총장이 쓴 글이 생각이 나요. 이대에서 평생 일하다가 총장이 됐는데, 젊은 교수들이 와서 제안하는 것이 다 예전에 본인이 시도했는데 별로였던 것들인 거죠. 하루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가 되레 이대의 발전에 큰 방해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시대는 계속 바뀌잖아요. 저도 애양원에서 항상 염두에 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라버리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가장 큰 목적만 지키면 돼요. 환자의 편의를 위해 더 좋은 결정을 하는 것이죠. 의사의 입장에서 편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해야 해요.

Q: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하셨는데, 권위를 지키고 싶은 의사들에게 원장님의 행보는 굉장히 파격적이고 진보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이 있죠. 정형외과 약은 사실 진통제가 90퍼센트예요. 퇴행성관절염을 낫게 하는 약은 없다고 보면 돼요. 무릎 아프다고 오는 환자들에게 소염진통제를 주죠. 지금은 약 봉지에 다 쓰여 있지만, 예전에는 그냥 지어주는 대로 먹었거든요. 30년 전에 통을 만들어서 ‘소염진통제’라고 써서 줬어요. 환자들이 약통을 보고 “나한테 주는 게 진통제요?” 하고 화를 냈죠. 낫는 약 달라고요. 그 당시에는 약 이름을 밝히는 것도 도전이었다면 도전이었겠죠.

Q: 한 번 좋은 일을 하기는 쉬워도 계속 하기는 힘듭니다. 혹시 그에 대한 부담 같은 건 없으신가요?

-전 애초에 소록도에 ‘좋은 일 하러’ 간 게 아니라 제가 ‘좋아서’ 간 것이에요. 어려운 시절, 로버트 윌슨, 마가렛과 마리안느, 스탠리 토플 부부 등 이역만리에서 살신성인한 서양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빚은 있어요. 그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더 어려운 나라의 이웃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해외 봉사를 하는 거고요. 보통 구정 전에는 수술 환자가 확 줄어들거든요. 환자들이 명절 앞두고 수술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구정을 포함해 일주일 내지 열흘을 다른 나라에 가서 수술해요. 케냐, 파키스탄도 다녀오고, 10년 동안 미얀마에서 수술을 하다가 최근 2년은 라오스에 다녀왔어요. 보통 35명 정도 수술을 하는 것 같아요. 예스병원으로 옮기면서도 물어봤어요. 여기도 구정 전에는 환자 수가 줄어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맞춰서 휴가를 달라고 했어요.

Q: 예스병원에서도 함께 뜻을 모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죠. 함께 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죠. 일례로 의료 봉사를 하면서 평소 거래하는 인공관절 업체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수술 기구를 기증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흔쾌히 기증해줬어요. 그들에게도 돈과 시간이 드는 일인데, 좋은 일 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원래 마음이 착해요.
김인권 병원장이 조선일보 닥터스플러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인권 병원장이 조선일보 닥터스플러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Q: 이쯤 되면, 어렸을 때부터 이타심이 남다르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의사가 되면 정확히 어떻게 일을 하게 되는지도 몰랐죠. 저희 작은 아버지도 정형외과 의사셨어요. 올해 아흔이신데, 재작년까지도 일을 하셨어요. 전 의대 다니던 시절, 이기적인 의사들을 많이 봤어요. 그러다 작은 아버지 병원에 갔어요. 오는 환자들이 죄다 무릎 아프고, 허리 아프고 앓는 소리를 하는 분들이잖아요. 작은 아버지께 “아이고 짜증나시죠?” 했더니, “아파서 날 찾아온 건데, 내가 왜 짜증을 내니?” 하시며 시종일관 친절하게 대하시는 거예요. 그때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Q: 인돈문화상, 세계성령봉사상, 중외박애상 성천상, 장기려 의도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도산인상 등 상도 엄청 많이 받으셨어요.

-상이 일에서 큰 보탬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전 상을 받아도 크게 쓸 데가 없어요.(웃음) 그런데 마지막에 받은 성천상은 부상이 1억 원이었어요. 큰돈을 받았더니, 어디에 쓸 건지 엄청 물어보더라고요. 그동안 서울대 의대 정형외과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5천만 원을 기탁했어요. 상금 덕분에 제가 살면서 도움 받았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죠. 나머지도 문화재단과 은사님께 드렸어요. 아내에게는 5백만 원을 줬습니다.

Q: 사모님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 당시 소록도로 함께 내려가신 것부터 대단하신 것 같아요. 가장 고마웠던 순간은 언제셨나요?

-항상 고맙죠. 옛날 사람이라 제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준 것 같아요. 자기 나름대로 서울에서 다른 의사 부인들처럼 살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정말 잘 적응하고 살았어요. 살면서 서로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Q: 2015년 서울대 졸업식에서 “너무 좋은 직장을 찾지 말라”는 축사로 화제가 되었었죠. 지금 젊은이들에게 또 하고픈 말씀이 있으실까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일을 하고 사세요. 전 제가 살아온 세월에 후회하지 않아요. 동요 없이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이 선택을 내 자신이 했고, 이 선택이 결코 잘못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자부심이었어요.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았는데, 그것이 반사회적인 길이 아니었던 것이 참 다행이죠. 단, 그때도 서울대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건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은 사회에 부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6남매인데, 그중 세 명이 한꺼번에 대학을 다닐 때도 있었어요. 한 명 등록금 내기도 벅찬데,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정말 대단하셨던 거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서울대라 누나 학비의 1/3만 냈다는 사실이에요. 나라가 교육을 지원해주었으니, 자기욕심만 채우지 말고, 사회에 기여해야 합니다.

Q: 예스병원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실까요?

-애양원이 비영리였다면 여기는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에요. 제가 모르고 가는 건 아닙니다. 자선 사업하는 병원이 아니니, 그런 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단, 예스병원의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순수하고, 무엇보다 의사의 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전 노인으로서 젊은 의사들의 의견들을 완화시키고 중재해야죠. 그들과 함께 환자들을 위하는 길로 나아가면 될 것 같아요.

Q: 아무래도 수도권에 자리 잡으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진료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겠죠?

-몇몇 환자들은 벌써 예약을 했네요. (웃음)

김인권 병원장 프로필
-예스병원 병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석·박사
-1980~1983년: 국립소록도병원 외과
-1981년: 인도 Schiefflin 나환자 재활병원 및 연구소 나환자를 위한 재활수술 수련의
-1983년: 여수애양병원 정형외과 과장
-1987~1988년: 영국 Oswestry. Robert Jone & Agues Hunt 병원 정형외과 연수
-1995년: 여수애양병원 원장
-2011년: EBS ‘명의’ 선정
-2016년: 여수애양병원 명예원장


[김인권 병원장이 말하는 무릎건강]

Q: 무릎이 아프지 않은 중장년층은 드뭅니다. 관절의 노화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일까요?

- 몇 십 년 썼으니, 당연한 겁니다. 우리 몸은 기계와 같습니다. 과도하게 사용하면 고장날 수밖에 없어요. 시골에서 몸으로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은 관절이 금방 망가져요. 반면 도시 사람들은 70~80세에도 멀쩡한 분들이 많고요.

Q: 평소 관절 건강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이 있을까요?

-우리 몸은 뼈, 인대, 근육으로 움직여요. 근육의 힘이 적으면 뼈가 스트레스를 금세 받아요. 근육이 강하면, 근육이 충격을 완화해 뼈에 가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고요. 근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쪼그려 앉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Q: 진료를 보시면서 안타까운 환자가 있으셨나요?

-인공관절 수술을 했을 때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염증 때문입니다. 10년 이상 치료 받은 남자 환자가 있었어요. 진주에서 인공관절하고, 염증이 생겨서 계속 재수술을 받다가 마지막엔 과감하게 인공관절을 빼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어요. 염증이 없어진 후 재건 수술을 했고, 지금은 지팡이 하나로 다니고 있어요.

Q: 염증이 말썽이군요.

-관리를 잘하면 오래 쓰고. 인공관절도 기구인 만큼 몸에 반응을 하죠. 관리를 잘해 정말 오래 쓰는 분들도 있어요. 전 보통 일 년에 한 번씩 꼭 오라고 해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때 해결하려고요. 그런데 환자들은 꼭 큰 문제가 생기면 그 때 와요.

Q: 아픈 관절을 치료하는 방법 중 인공 관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치료 방식 중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요?

-지금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가령 줄기세포를 활용해 재활시키는 것도 연구하고 있지만, 지금 단언할 수 없는 방법이에요. 또한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권하는 것은 의사가 제 나름의 윤리대로 결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공관절은 10~20년 정도 사용할 수 있어요. 70~80세 노인들에게는 인공관절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의사를 배제하고 환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이로운지 결정하는 것이죠. 거기에 비용적인 측면도 물론 고려해야 합니다. 인공관절에 비해 줄기세포 치료는 비용을 4배 가까이 부담해야 합니다. 최대한 환자의 입장에서 잘 따져서 결정하는 것이 의사의 윤리입니다.

Q: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인공관절은 뼈 붙는 기간이 6~12주 걸려요. 최소침습으로 수술을 했으니, 금방 움직여도 된다는 의사들도 있는데, 큰일 날 소리죠. 과정과 겉보기가 달라지는 거지 수술의 원리는 바뀌지 않았어요. 지엽적인 것에 치우치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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