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 전보발령은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벗어나 무효다."

대구지법 김천지원 민사1부(재판장 박치봉)는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이하 공단) 박왕규 전주지부장에 대한 인사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조상희(사진) 공단 이사장의 다섯 번째 패소다. 조 이사장은 취임 후 인사 문제로 1년도 채 안돼 3번의 가처분 사건과 2번의 본안 사건에서 소송전을 벌여 모두 졌다. 물론 이중 4건은 조 이사장이 항고나 항소해 최종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법무부 산하 법률구조공단은 조 이사장 취임 직후부터 각종 소송에 휘말려 몸살을 앓았다. 조 이사장은 전임 이헌 전 이사장이 임기를 1년 넘게 남긴 상황에서 해임되면서 작년 6월 25일 이 전 이사장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 취임해 주목받기도 했다. 조 이사장 취임 이후 법률구조공단은 어쩌다 인사 잡음 등으로 끊이지 않는 내홍을 겪게된 걸까.

◇지부장을 출장소장으로 발령…보복인사 논란
조 이사장은 취임 한 달 뒤인 작년 7월 20일 공단 첫 인사를 내면서 박 지부장을 전주지부장에서 전주지부 군산출장소장으로 전보 인사했다. 공단 내 직급이 높은 순부터 '지부장→출장소장→지소장'인 것을 감안하면 좌천도 아닌 징계성 인사였다. 박 지부장은 자신이 조 이사장의 공단 운영에 반발하자 보복성 인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조 이사장은 "박 지부장이 허위보고를 했고, 억지를 부려 징계성 인사를 낸 것"이라고 했다. 또 박 지부장이 공단 내에서 대결구도를 조장한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 문제는 박 지부장이 '전보발령 무효 확인' 소송을 내며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박 지부장이 함께 제기한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결과가 먼저 나왔다. 가처분소송은 실제 인사조치가 부당했는지 본격적으로 다투는 본안 소송의 ‘전초전’이었다. 법원은 박 지부장의 인사에 부당한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본안 심리를 하는 동안 해당 인사의 효력을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조 이사장이 든 징계 사유가 명백히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박 지부장에게 인사와 관련해 진술 기회를 주지 않아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가처분 소송 결정 다음날인 작년 8월 14일 박 지부장에 대한 전보 인사를 취소했다. 이에 박 지부장은 기존에 제기했던 본안 소송의 청구 취지를 무효 확인에서 800만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으로 변경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청사.

◇집이 '광주'인 사람을 관사도 없는 '의정부'로...또 소송戰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잠해지나 싶었던 공단 내 인사 문제는 올해 초 다시 불거졌다. 조 이사장이 지난 2월 15일 공단 내 변호사들에 대한 정기 인사를 단행하면서다. 이번에도 박 지부장에 대한 인사가 발단이 됐다. 박 지부장은 전주지부장에서 의정부지부장으로 전보됐다. 박 지부장은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 지역은 스스로 지원하지 않는 한 발령이 나지 않는데 지방에 남겠다고 한 나를 굳이 의정부로 보낸 것은 조 이사장의 보복 인사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고지(광주광역시)에서 가장 먼 의정부지부로 전보됐다"며 "지금까지 전주지부는 매일 버스 등으로 출퇴근했지만 의정부지부는 광주 집에서 다니는 게 불가능하고 관사도 없어 거주지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 이번 인사로 겪게 되는 불이익이 크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지난 인사 때와 마찬가지로 전보발령 무효를 확인하는 소송과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동시에 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은 가처분 사건에서 "박 지부장에 대한 인사는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벗어나 무효라고 볼 여지가 많은데다 업무상 필요성이 없거나 미미한 반면, 박 지부장이 입는 생활상 불이익이 크다"며 박 지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판단을 불복 없이 받아들였던 작년 7월 인사와 달리 조 이사장은 이번엔 가처분 이의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앞선 가처분결정이 정당하기 때문에 조 이사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한편 일련의 법원 판단을 근거로 공단 변호사노조는 지난 3월 22일 조 이사장을 직권남용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변호사노조는 "조 이사장이 특정 변호사를 길들일 목적으로 두 차례 부당 인사를 단행하고, 재판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하고 있어 고발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김천경찰서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법원 "첫 인사, 정기 인사 모두 부당한 인사… 무효"
지난 4월 '2018년 7월 인사'에 대한 첫 본안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공단이 박 지부장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조 이사장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 또는 추측만 가지고 박 지부장에게 불이익을 주고자 인사를 냈다"며 "(인사의) 객관적 정당성이 명백히 상실했고, 그로 인해 박 지부장이 입었을 정신적 고통의 정도 등을 고려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전보 발령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뤄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면담이나 의견제출 기회를 주지 않는 등 최소한의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이달 14일 ‘2019년 정기 인사’에 대한 첫 본안 판단이 나왔고 마찬가지로 법원은 "박 지부장에 대한 전보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최근 5년 동안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발령난 변호사들은 대부분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을 2순위 내로 희망했었다"며 "공단은 그렇지 않은 3가지 예외사례를 들지만 이는 오히려 수도권 근무를 희망하지 않을 경우 지방에서 순환 근무하는 것이 통상적인 인사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공단은 박 지부장에 대한 인사가 기관간 순환보직과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교류 원칙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할 뿐 그 업무상 필요성이 무엇인지에 관해 별다른 주장과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사건 전보발령은 박 지부장에게 적지 않은 생활상 불이익만 입힐 뿐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