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 덕에 1등 산유국 된 美, '중동 콤플렉스' 벗어났다

입력 2019.06.15 03:00

셰일 채굴 본격화한지 10년만에 '美 일일 원유생산량' 2배 늘어
석유에 목맬 필요 없어져… 트럼프 "중동의 경찰 되지 않겠다"

'셰일 혁명'으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줄어든 미국이 중동 정책을 바꾸면서 세계 질서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작년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랐고, 해외 원유 수입량은 2005년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3월 "미국이 2021년에는 원유 순수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3일(현지 시각) 오만해에서 일어난 유조선 피격 사건 이후 국제 원유 시장이 차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를 방증한다. 이날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2.2% 상승하는 데 그쳤다. 평소 등락률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날 뉴욕 증시는 오히려 에너지 업종 강세로 소폭 상승하면서 마감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셰일 혁명으로 인해 작년 미국에서 원유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점이 공급 우려를 상쇄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동이 기침을 하면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리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고 했다.

미국, 2021년 원유 순수출국 변신

글로벌 에너지 기업 BP가 지난 11일 공개한 작년도 세계 에너지 통계 리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하루 원유 생산량은 220만 배럴이나 증가해 1531만 배럴을 기록했다. 역대 단일 국가 연간 생산량 증가 폭 가운데 최대 기록이다. 2012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 증가 폭은 700만 배럴인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루 평균 수출량에 맞먹는 수치다.

BP는 "'셰일 혁명'으로 텍사스 퍼미안 유전에서 채굴하는 셰일 원유의 생산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가 미 정부의 대(對)베네수엘라 및 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조사 기관 WTEx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해외 원유 수입 중 중동산이 차지한 비중은 22%에 그쳤다. 미국이 더 이상 중동의 원유에 목을 매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CNN은 13일 "미국의 원유 생산량 급증으로 세계 역사가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크게 늘린 건 '셰일 혁명' 덕택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미국 노스다코타주 바켄 셰일 유전에서 석유와 가스가 분출됐다. 지하 3000m 암석층에 갇혀 있던 석유와 가스를 퇴적암의 일종인 셰일(혈암)층에 기름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캐낼 방법이 없었다. 미국의 혁신 기업가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수천m를 파고 내려간 뒤 90도를 꺾어 다시 수천m의 수평 시추공을 박고, 여기에 모래·화학품을 섞은 고압의 물을 쏘아 바위를 깨는 혁신을 이뤄냈다.

자국 원유 생산이 급증하면서 미국의 해외 원유 의존도는 크게 감소했다. BP는 "미국의 순 원유 수입량(총 원유 수입량에서 원유 수출량을 뺀 수치)이 2005년 하루 1200만 배럴에서 현재는 300만 배럴 미만으로 감소했다"고 했다.

◇트럼프 "미국은 에너지 지배 추구한다"

셰일 혁명 덕에 미국은 아킬레스건이던 중동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말 시리아 철군을 감행한 것도 에너지 자립이 낳은 자신감의 발로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철군은 오래된 공약"이라며 "미국은 더 이상 중동의 경찰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여름 "우리 정부는 이제 에너지 독립뿐 아니라 에너지 지배(energy dominance)를 추구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미국 중동 정책 변화는 세계 질서까지 바꿔놓고 있다. 미국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에너지 수입이 필요 없게 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온갖 일을 다 처리해주는 수퍼 파워 역할을 포기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유례없는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 정세 불안은 이제 미국이 아닌 중국에 더 큰 타격을 미치게 된다. WTEx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원유 중 중동산의 비중은 44.1%에 달한다. 더구나 중국은 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다. 호르무즈해협이 테러나 이란의 봉쇄 등으로 막히게 되면 제일 큰 타격을 받는 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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