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의 역사 서재] 조선 선비들은 단군보다 箕子를 더 높이 평가했다

조선일보
  •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입력 2019.06.15 03:00

한국사의 계보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한 사회의 역사 인식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특정한 이념을 추구하는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한국 시민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역사 인식을, 조선시대 사람들은 갖고 있지 않았고, 그들과 신라, 고려인들의 역사 인식도 판이하게 달랐다.

지금 한국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인식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nation state)를 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성과 체계 위에 형성돼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해 널리 유포된다. 그러니 본래 가변적인 것인 역사 인식이 고정적이며 지속적인 것으로 시민들에게 각인된다. 작금 각국에서 벌어지는 역사 분쟁의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 인식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 머지않아 또 변화할 것이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보면 이른바 역사 분쟁이라는 것도 과거의 추억이 될지도 모르며, 지속된다 하더라도 그 논쟁의 양태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교양시민들은 역사 인식이란 시대에 따라 매우 가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현재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역사 인식의 다양한 양태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교토대학에서 고려사를 가르치고 있는 야기 다케시(八木毅) 교수의 '한국사의 계보: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영토의식은 어떻게 변화했는가'(소와당)는 우리 입장에서 당혹스럽고 도발적이지만,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다.

'한국사의 계보'
우리는 지금 단군을 받들어 개천절을 기념하고, 일상 언어에서도 '단군 이래 최대 호황' 운운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기자(箕子)를 더 중시했다. 그들에게는 민족보다 문명이 더 중요했다. 문명과 민족의 긴장 관계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어쩌면 21세기 한국의 운명을 가를 사안일지도 모른다.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국호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사에서 3개의 국호가 경쟁한다. 한(국), 고려, 조선이다. 현재 남북한이 그중 두 개를 쓰고 있고, 김일성은 고려를 통일국호로 제안한 바 있다. 이 각각의 국호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이 책은 상세히 설명해준다. 독자들도 이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저자의 주장에 다 동의해서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하고 당혹스러워도 우리의 역사 인식을 상대화해 볼 필요가 있어서다. 그게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이롭다. 고정적이고 배타적인 역사 인식은 우리를 '국제미아'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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