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8년 드나든 카지노… 소설 '도박사'의 배경

입력 2019.06.15 03:00

[아무튼, 주말]
왕들의 휴양지 독일 비스바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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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스바덴의 명물 쿠어하우스. 내부에 도스토옙스키가 룰렛 중독에 빠졌던 카지노가 있다. ‘볼링 가든’으로 불리는 분수대 주변 잔디밭에선 지난 1일 영국 가수 엘튼 존의 생애 마지막 월드 투어인 ‘페어웰 옐로 브릭 로드(Farewell Yellow Brick Road)’가 열렸다.
'로마 시대부터 발전한 온천 도시' '유럽의 라스베이거스' '리슬링 와인을 가장 가까이서 맛볼 수 있는 곳'….

독일 헤센주 주도(州都)인 비스바덴(Wiesbaden)은 온천과 카지노, 와인으로 유럽인들에게는 유명한 휴양지다. 유럽 한복판에 있는 세계 3대 환승 공항인 프랑크푸르트공항과 전철로 30분 거리라는 게 엄청난 경쟁력이다. 유럽 웬만한 곳에서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2~3일씩 휴양하러 오는 유럽인이 많다. 반면 한국에는 잘 안 알려졌다.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럽인만 아는 숨겨진 휴양지 같았다.

로마시대에 발견된 온천 도시

독일어로 들판을 뜻하는 'Wiesen(비젠)'과 목욕을 뜻하는 'Baden(바덴)'을 합친 도시명처럼 이곳은 온천에서 유래했다. 2000년 전 비스바덴의 라인강 건너편인 마인츠까지 진주한 로마군이 강 건너 온천을 발견하고 휴양지로 삼았다. 온천수가 류머티즘과 관절염 치료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스바덴 곳곳에 치료소와 재활병원, 건강센터들이 생겨났다. 중세시대에는 유럽의 황제와 제후들이 별장을 짓는 '왕들의 휴양지'로 불렸다.

지금도 비스바덴의 최대 관광 상품은 26곳에 달하는 '온천'이다. 나사우어 호프(Nassauer Hof) 같은 특급 호텔은 자체 온천탕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 관광객은 시(市)가 운영하는 테르말바트 아우캄탈(Thermalbad Aukammtal)이나 카이저 프리드리히 테르메(Kaiser-Friedrich-Therme)를 이용할 수 있다. 테르말바트 아우캄탈은 4000㎡의 수영장과 3000㎡의 사우나 시설을 갖춰 규모가 크다. 1913년 개장한 카이저 프리드리히 테르메는 독일판 아르누보인 유겐트 양식으로 지어져 외관이 고풍스럽다. 내부에는 중앙에 있는 냉·온탕 주변으로 러시아식 스팀 사우나실, 핀란드식 사우나실, 터키식 증기탕, 얼음방, 로마식 미온수탕 등이 빙 둘러서 있다. 한국 찜질방과 비슷한 구조다. 다른 독일 온천들처럼 남녀 공용이지만, 화요일은 여성만 입장할 수 있다.

온천에 입장할 때는 반드시 온몸을 두를 수 있는 대형 타월이나 가운을 지참해야 한다. 고온의 사우나에서 땀이 타인에게 묻지 않도록 타월이나 가운을 바닥에 깔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영복은 뜨거운 온천물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유해물질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에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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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스바덴 도심 건물 중 가장 높은 98m 높이의 첨탑이 있는 루터란 마켓 교회. 1862년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3 에버바흐 수도원의 내부 예배당 모습.
라인강의 선물, 리슬링 와인

비스바덴이 속한 라인가우(Rheingau·라인강변이란 뜻) 지역은 모젤(Mosel) 지역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화이트와인 '리슬링'의 대표 산지로 꼽힌다. 라인가우 지역 포도 재배 면적의 80%가 리슬링 품종이다. 와인 전문가들은 리슬링의 특징으로 과일향, 꽃향기, 깨끗한 맛 등을 꼽는다. 세계적인 여성 와인 저널리스트인 잰시스 로빈슨은 "잘 익은 리슬링은 응축된 순수한 과일향과 아주 뛰어난 자연 산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리슬링 와인은 '라인강의 선물'로 불린다. 라인강변 구릉에 수십㎞에 걸쳐 펼쳐진 포도밭은 풍부한 일조량으로 유명하다. 하늘의 태양이 한 번, 라인강이 반사해준 햇볕이 다시 한 번 포도를 여물게 하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마지막 작품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에서 라인가우 지역을 축복받은 곳으로 표현한다. '이곳은 기후도 온화하고 지세도 험준하지 아니하고 부드러우며,…라인 지방 산맥이 거친 바람을 떡 하니 막아주며, 정오의 태양이 복되게도 저 멀리까지 내리쬔다.' 매년 8월에 열리는 라인가우 와인축제는 4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독일 최대 축제 중 하나다.

비스바덴이 추천하는 와인 투어는 크게 두 가지. 먼저 차로 30분쯤 떨어진 루데스하임에 가면 1871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제국 초대 황제 빌헬름 1세가 독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니더발트 기념비(또는 게르마니아 여신상)를 만날 수 있다. 라인강을 굽어보는 산 중턱에 세워진 높이 38m의 웅장한 기념비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포도밭이 길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광활한 포도밭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루데스하임이다. 루데스하임은 경치가 아름다운 데다 역사 유적이 많아 주변 65㎞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비스바덴 근처의 엘트빌이란 도시에 있는 에버바흐(Eberbach) 수도원 탐방이다. 12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중세시대 수도원으로는 최대 규모인 300㏊의 포도밭을 경작했다고 한다.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 '장미의 이름'(1989년)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현재 와이너리 투어와 각종 문화 축제가 열리는 문화 와인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연간 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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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인강변에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독일을 대표하는 화이트와인, 리슬링 와인의 주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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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 ‘장미의 이름’ 촬영지인 에버바흐 수도원. /비스바덴관광청·독일관광청
도스토옙스키를 중독시킨 카지노

비스바덴은 독일 다른 도시들과 달리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을 거의 받지 않아 18~19세기 지어진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가장 유명한 건물은 카지노와 대형 공연장으로 쓰이는 쿠어하우스(Kurhaus)다. 1810년 이 카지노가 문을 연 이후 바그너와 괴테, 브람스 등 독일 예술가뿐 아니라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까지 유럽의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다. 도스토옙스키는 1863년 파리로 가는 길에 이곳 카지노에 들렀다가 도박에 중독됐다. 이후 거의 8년간을 도박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했다. 1866년 작 '도박사'는 그가 도박빚을 갚기 위해 불과 26일 만에 쓴 소설이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그의 대표작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뇌하는 지식인상과 달리 '도박사'의 주인공은 돈이 없어 쩔쩔매고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로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도박에 중독된 평범한 청년이다. 바로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쿠어하우스 카지노 내부에는 대문호가 룰렛을 하던 테이블을 보관한 '도스토옙스키홀'이 있고, 건물 앞 '볼링가든'이란 잔디광장에는 그의 흉상이 전시돼 있다.

사족 하나. 지난달 12~14일 비스바덴에서 열린 독일 여행업계의 최대 행사 독일여행박람회(German Travel Mart·GTM) 행사 기간, 행사에 초청받아 온 미디어·여행업계 종사자를 빼고는 동양인 단체나 개별 관광객을 볼 수 없었다. 모두 가족 단위로 휴양하러 온 유럽의 개별 관광객들뿐이었다. 단체 관광객들이 빚어내는 소음이나 줄 서기 같은 혼잡도 없었던 비스바덴, 정말 휴양지다웠다.

독일 비스바덴 위치도
여행정보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매일 3편의 직항 노선(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루프트한자)이 출항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30분가량. 프랑크푸르트공항의 지하로 연결된 전철역에서 S반(전철)을 이용해 30분이면 비스바덴 중앙역에 도착한다. 비스바덴에는 버스·택시 같은 대중 교통수단이 있지만, 맑은 공기를 음미하며 걷는 것을 권한다. 도심 명소 어디든 성인 걸음으로 20~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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