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니 4개 뽑혔다, 턱도 돌아갔다… 의사가 "원래 그렇다"고 한다면

조선일보
입력 2019.06.15 03:00 | 수정 2019.06.15 03:52

[아무튼, 주말]
어떻게 하나요 이런 의사 만나면

서울 강남역 A치과에서 교정 치료를 한 환자들은 ‘턱이 아파요, 마음도 아파요’라며 치료 실패와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왼쪽은 지난 3월 환자들이 치과 앞에서 시위에 나선 모습.
서울 강남역 A치과에서 교정 치료를 한 환자들은 ‘턱이 아파요, 마음도 아파요’라며 치료 실패와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왼쪽은 지난 3월 환자들이 치과 앞에서 시위에 나선 모습. /독자 제공
김윤정(가명)씨는 지난해 초 치아 교정 치료를 시작했다. 경력 있는 의사, 최신 장비 등 광고를 접한 뒤 강남역 인근에 있는 규모 등을 고려해 병원을 고르고 골랐다. 담당 의사는 김씨의 멀쩡한 생니 4개를 뽑았다.

김씨는 발치 후 턱이 한쪽으로 쏠리는 비대칭이 생겼다. 입을 벌리면 뚝뚝 소리가 났다.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턱이 아팠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 치과에 갈 때마다 이야기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한번은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가 오히려 유난을 떤다며 진상 손님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자괴감만 들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픈 것을 아예 인정 안 해주니까. 이러려고 치료를 시작한 건지."

김씨가 증상을 얘기할 때마다 의사는 치료 과정이라며 괜찮다고만 얘기했다. 전문용어를 써가며 이야기하는 의사에게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한번은 작정하고 불만이라도 얘기해 보려 했지만, 병원은 늘 대기하는 환자로 붐비고 의사는 바빴다. 김씨는 낸 선급금을 포기하고 병원을 옮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진료 실패 아닌가요

지난해 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명이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2016년 기준 17회. 전 국민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병원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진료 횟수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 치료 실패, 부작용, 과잉 치료 사례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치과 피해 관련 상담은 2017년보다 103% 증가했다. 병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불만 글이 올라온다.

그러나 푸념 이상의 대응은 쉽지 않다. 극단적인 의료 사고나 실수가 명백한 경우엔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치료 중 실수, 부작용, 과잉 치료 등이 의심되지만 치료 과정인지 헷갈린다. 의심을 가져봐도 전문가인 의사가 얘기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귓속 염증 때문에 지난달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은 이모씨는 치료 뒤부터 자주 어지러움을 느꼈다. 병원 측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고 몇 차례 물었더니 의사는 '왜 환자가 진단을 내리려고 하느냐, 관련 논문이라도 읽어 보고 얘기하는 것이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김씨는 병원을 옮겨 전정기관 등을 치료받고 있다.

지난해 압구정 투명치과 측이 본관 문을 닫고 좁은 별관에서 한정된 인원만 진료한다고 밝히면서 환자들이 땡볕에 줄을 서 있는 모습.
지난해 압구정 투명치과 측이 본관 문을 닫고 좁은 별관에서 한정된 인원만 진료한다고 밝히면서 환자들이 땡볕에 줄을 서 있는 모습. /김아사 기자
환자 중엔 마음먹고 병원과 다퉈 보려 하는 이들도 있다. 최모씨는 2016년 라식 수술 후 시야가 흔들리는 현상이 생겼다. 눈을 깜빡이면 물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김씨는 의료 소송을 고려했다. 그러나 막상 절차를 생각해 보고 시간, 비용 등을 감안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의료 소송은 법조계에서도 까다로운 분야로 꼽힌다. 변호사들만 배 불리는 경우가 많다.

시위를 하고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리는 경우엔 병원에서 명예훼손 등으로 문제를 삼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조차 병원 이름을 말할 수 없어 강남역 ○번 출구, 초성 등을 사용하는 식으로 병원을 묘사한다. 이씨는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 대부분 병원을 잘 골라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라며 "소통이 실력이라며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이야기가 통하고 인품이 좋은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불만 있으면 40만원 내고 얘기해

일부 비윤리적 의사는 대놓고 환자를 속이기도 한다. 2017년 2월 강남역에 있는 A치과에서 교정 치료를 시작한 신모씨는 친구와 교정 장치를 비교하다가 계약 시 병원에서 사용한다던 장치와 실제 자신이 착용한 장치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치과는 일본 T사에서 만든 '클리피씨'라는 교정 장치를 사용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내의 H사가 만든 다른 장치를 사용했다. 클리피씨라는 장치는 H사 것보다 가격이 높다.

황당한 것은 치과 측 처사였다. 신씨와 같이 불만을 갖는 환자가 증가하자 치료에 방해된다며 의사에게 별도 상담을 받으려면 1시간에 40만원을 내라는 공지를 붙였다. 신씨는 "사실상 불만을 얘기하면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의료인 중엔 비윤리적, 사기에 가까운 치료를 한 뒤 병원 문을 닫아버리거나 의료 사고 후 이름만 바꿔 병원을 다시 차리는 식으로 영업하는 이들도 있다. 환자 수천 명에게 선급금 수백만원을 받은 뒤 사실상 영업을 하지 않았던 압구정 투명치과의 강모 원장이 대표적 예. 지난해 환자 1000여 명이 나서 이 치과 강모 원장을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신해철씨 의료 사고로 알려진 스카이병원 강모 원장 역시 기존 병원을 닫고 다른 이름으로 병원을 열어 영업을 계속해 논란이 됐었다.

의료인 정보 공개돼야

서울 강남역 A치과는 환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의사 상담은 시간당 40만원이라는 팻말을 병원 앞에 놓았다. 환자들은 입을 막겠다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린다.독자 제공
서울 강남역 A치과는 환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의사 상담은 시간당 40만원이라는 팻말을 병원 앞에 놓았다. 환자들은 입을 막겠다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린다. /독자 제공
그러나 이런 비윤리적 의사들을 제재하기는 쉽지 않다. 허위 광고나 비윤리적 의료 행위에 대해 보건소 등이 단속에 나서야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치과 의사는 "의사의 고유 치료법에 대해 보건소 등이 제대로 된 의료 행위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과 손잡고 내놓은 것이 '전문가 평가제'다. 지역 현장을 아는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진료 행위에 문제가 있는지 평가하게끔 한 제도다. 2016년 11월 광주 등 3개 도시에서 시범 사업을 시행하다가 올해 5월부터 의협과는 서울 등 8개 도시, 4월 치협과는 광주, 울산 등 2개 도시에서 시범 사업을 확대했다. 전문가 평가단이 조사를 실시한 뒤 의협이나 치협이 행정처분 수준을 결정하고 복지부에 요청하면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의료인이 동료를 평가하는 구조기 때문에 과실이나 비윤리적 진료 행위를 좁게 해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2016년 11월부터 의협이 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한 것은 1건에 불과하다. 1건도 수사나 재판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더욱이 의사들은 면허 취소까지 이뤄진다 해도 최대 3년이 지나면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있다. 지난 2002년 영남제분 회장 아내에게 돈을 받고 허위 진단서를 써줬다가 벌금형을 받은 세브란스병원 의사나 환자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던 의사들도 버젓이 업무에 복귀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의사 면허 재교부 신청 43건 중 41건이 승인됐다.

전문가들은 의료 소비자인 환자가 좋은 의사와 나쁜 의사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인에 대한 과실, 징계 등의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의 경우 징계 정보에 대한 공개 제도가 갖춰져 있지만 의사는 여기에서 빠져 있다. 지난해 정부가 나서 정보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계는 의료인을 낙인찍을 가능성 등이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공개 범위가 다르지만 뉴욕, 매사추세츠, 텍사스주 등에선 면허 정보뿐 아니라 범죄 기록이나 과실로 인한 병원 내 징계 사실 등도 공개한다. 캐나다의 경우엔 의과대학이 의료 과실 정보 등 의료인 정보를 공개한다.

환자들은 이미 비윤리적 진료를 하는 곳을 선별해 스스로 대비책을 만들고 있다. 압구정 투명치과, 강남역 A치과 등에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의 사례가 알려지며 꼭 걸러야 하는 '블랙리스트 병원'이 된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의사 이름도 환자들 사이에서 공유된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의료인 정보 공개 제도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안정 강화로 이어져 결국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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