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로봇 과학자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박사과정 때인 2006년 개발한, 도마뱀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스티키봇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올해 최고의 발명품’에 선정됐고 카메라 없이 촉감에 의존해 균형을 잡고 1 높이 장애물까지 뛰어넘는 네발 로봇 ‘치타’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 로봇·자동화 학회'(ICRA)에서 기존 ‘치타’(중량 40㎏)의 소형화 버전인 ‘미니 치타’(9㎏)를 발표한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로봇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걸 해야 한다. 사람이 멀쩡히 잘하는 걸 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의 로봇은 사람이 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일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4족 보행 로봇을 계속해서 개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빌리티(운동성)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있고 탱크, 자전거도 있지만, 그건 도로가 없으면 못 쓰는 장비죠. 이 학회장에 있는 많은 로봇이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지체장애인들이 경사가 가파르면 못 다니듯 말입니다. 재난 상황 등 위험한 곳에 침투한다든지 할 경우에 바퀴 달린 로봇은 턱이 있으면 못 돌아다니잖아요. 후쿠시마와 같은 상황에 침투하려면 바퀴 달린 걸로 안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집안에서 도움을 주는 로봇도, 집안을 아주 아주 깨끗하게 정리해두지 않으면 장애물이 많아요. 그래서 이런 로봇도 다리가 필요할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4족인가요? 8족도 있고 인간처럼 2족도 있는데.
"실은 2족이 제일 좋아요. (4족에 비해)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 안 된다는 점이 특히 그렇죠. 좁은 지역을 이동한다고 치면, 4족 로봇이 갈 수 없는 곳도 2족 로봇은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점도 있어요. 너무 불안해요. 아직 2족 로봇은 넘어지면 안 부서지는 로봇이 없어요. 안 넘어지게 하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아직은 4족이 훨씬 실용적이고 유리합니다."

지난달 21일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로봇 및 자동화 콘퍼런스’(ICRA) 논문 발표장에서 자신이 개발한 미니치타를 안고 있는 김상배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

-그러면 앞으로 2족 로봇도 개발하실 계획이 있습니까.
"할 수 있어요."

-그 로봇 이름은 '몽키(원숭이)'가 될까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동물 세계를 보면 대부분이 다리가 넷이에요."

김 교수 연구진은 이날 인터뷰 이후 최근 열린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지에 2족 로봇 '헤르메스(HERMES)'를 발표했다. 인간의 동작대로 원격조종이 가능한 인간형 로봇 헤르메스는 도끼로 벽을 부수고 소화기로 불을 끄는 등의 동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MIT 김상배 교수 팀이 개발한 재난 대응 로봇 ‘헤르메스’가 도끼로 벽을 내리치고 있다. 사람이 로봇이 촬영한 영상을 보며 팔다리를 움직이면 로봇이 그대로 따라 한다(작은 사진).

-교수님 강의나 기사를 찾아보면 로봇의 역할이 '인간의 어려움을 돕는다'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로봇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멀쩡히 잘하는 걸 할 필요가 없어요. 앞으로의 로봇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사람이 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데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세상이 오고 있잖아요. 고령화 사회에 젊은 인력은 줄고, 도와줘야 할 노인 인구는 늘어납니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20~30년 뒤에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텐데 거기에 로봇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 투입될까요?
"대표적으로 (점점 느는) 고령 인구를 돌보는 인력 부족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설령 로봇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로봇만으로는 모두 돌보기가 어렵다 해도 사람을 보조하는 로봇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난해 말 김상배(왼쪽) 교수가 미국 NBC 방송의 ‘더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에 출연해 미니치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 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는 얼마큼 진행됐습니까.
"(치타와 같이) 다리가 달린 로봇은 굉장히 비싸고 느려서 실험하기 어렵습니다. 로봇이 더 발전하기 위해선 복잡한 실제 로봇을 갖다 놓고 실험도 하고 알고리즘도 짜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는 뜻이죠. 그래서 우리는 미니 치타를 '리서치 플랫폼'으로 만들었어요."

-리서치 플랫폼이 무엇인가요.
"이 로봇을 여러 대 만들어서 다른 연구실과 협동해서 연구하는 거죠. 로봇을 연구하고 싶지만 실물 로봇이 없는 연구실에 주는 겁니다. 같은 로봇(플랫폼)으로 연구하면 (연구 성과를) 공유할 수 있죠. 같은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서로 다른 걸 개발하다가, 개발이 되면 받아서 쓸 수도 있고. 굉장히 여러 가지 방식의 협업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다섯 대를 다른 연구실에 공유했습니다."

-똑같은 치타를 5곳에 주면, 그곳에서 여러 다른 방향의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예컨대 어떤 연구실은 카메라 다는 기술이 뛰어나고 그 방면에 뛰어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 연구 성과를 우리와 공유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각각의 영역을 나눠 다섯 팀이 연구를 진행하고 나서 '합체'를 하면 저 혼자 연구하는 것보다 5배 빠른 연구 속도가 나는 거죠."

-로봇이 사람과 정말 다르거나, 혹은 사람보다 진짜 못하는 게 있다면요?
"로봇이 물컵 잡는 비디오 본 적이 있나요. 굉장히 느려요? 왜 그렇게 잡을까요. 연산력이 늦어서가 아닙니다. 공장 가면 로봇 팔이 대단히 빨리 움직이는데 물컵은 왜 이리 늦게 잡느냐면요 부딪칠 줄을 몰라서 그래요. 휴대폰이 있다 쳐요. 사람이 휴대폰을 잡으면 (인식하진 못하지만) 그냥 손가락이 휴대폰에 '구구궁' 부딪치며 잡는 연속 동작을 해요. 그런데 로봇이 그런 식으로 휴대폰을 잡으면 다 부서질 겁니다. 사람은 피부가 말랑거리는 것도 있지만 근육도 말랑거립니다. 로봇 역사상 대부분 로봇은 부딪치는 걸 피해왔어요. 그래서 모든 게 느리고, 위치 제어(어떤 위치로 이동해야 할지 미리 입력된 정보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만 한 거예요."

-혹시 미니치타 같은 로봇이 군용(軍用)으로 쓰여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을까요.
"군용은 안 쓸 것 같아요. 이미 군사 부문은 공중으로 옮겨간 것 같아요. 총을 쓰고 하는 전쟁은 앞으로 점점 없어지지 않을까 대부분 하늘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AI(인공지능)가 인간만큼 발전해서 일어날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AI란 단어는 조심해서 쓰셔야 해요. 사진을 인식하는 걸 AI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만큼 똑똑하다'고 오인하기 쉬워지죠. 학회에서 말하는 AI도 굉장히 단순한 것밖에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I가 암을 진단한다거나 하는 것도 보통 패턴을 읽는 것이지 판단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AI가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얘기는 과장일까요?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지능을 너무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거지요. 계산 능력은 사람을 뛰어넘은 지 몇 십 년 됐고, 검색도 그렇죠. 그렇다고 컴퓨터가 사람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능은 한 잣대로 표현할 수가 없잖아요. 학생이 두 명인데 '얘가 얘보다 똑똑해'라고 표현하는 건 오만한 거예요. 이러저러한 게 똑똑하다고 말하면서 잘못된 판단도 생기고요. '컴퓨터가 사람보다 똑똑해질 수 있느냐'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어요."

-로봇과 사람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전혀 동등하지 않지요. 뭐가 더 낫느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2045년 로봇이 사람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식의 얘기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잘하는 것과 컴퓨터가 잘하는 건 굉장히 달라요. 우리가 사람의 두뇌에 대해 얼마나 알까요. 우리도 눈곱만큼도 이해 못 하는 걸 비교를 하려는 건."

-끝으로 우리나라 로봇 발전 제언을 부탁 드립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얼마나 뒤져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볼 때는 우리나라의 교수나 학생의 수준은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관료나 결정권이 있는 기업 임원들이 로봇에 대한 공부가 부족합니다. 다른 나라의 정책을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로봇기술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맞는 방향을 잘 정하면, 한국에서도 로봇 발전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