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리그팀 홀로 응원한 팬… 그에게 달려가 90도 인사한 선수

조선일보
입력 2019.06.15 03:00 | 수정 2019.06.15 03:51

[아무튼, 주말]
고양시민축구단 눈물의 인사 뒷얘기

지난달 18일 강원도 평창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고양시민축구단과 평창 FC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은 안명환 선수가 라대관 서포터스에게 90도 인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달 18일 강원도 평창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고양시민축구단과 평창 FC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은 안명환 선수가 라대관 서포터스에게 90도 인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달 18일 강원도 평창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3 리그 베이직'의 고양시민축구단과 평창 FC의 경기. 1대1 동점 상황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주어진 페널티킥을 안명환(21) 선수가 성공시켰다. 그러고는 관중석에서 홀로 응원 중이던 라대관(31) 서포터스에게 달려가 90도 인사 세리머니를 했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4시간을 걸려 원정 온 라씨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K3 리그 베이직' 경기 중 이례적으로 조회 수 300만을 넘어서며 화제다.

'K3 리그 베이직'은 국내 축구 리그 중 K리그와 내셔널리그 밑에 있는 아마추어 리그다. 많은 팬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하위 리그 소속의 선수. 그리고 그 팀을 응원한 단 한 명의 팬. 라대관의 눈물과 안명환의 90도 인사에는 어떤 사연이 있던 것일까.

축구 선수를 꿈꿨던 열성 팬 '라대관'

―세리머니를 받고 펑펑 울었다.

"고양이 7연패 중이었다. 승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역전 골이 들어갔을 때부터 울컥했다."

―언제부터 팬이었나.

"창립 멤버다. 고양 토박이로 같이 붉은 악마 활동을 하던 친구가 고양시에도 축구팀이 있다고 해서 당시 고양 KB국민은행팀 경기를 본 후 팬이 됐다. 그런데 고양 KB국민은행이 우승한 해 (금융기관은 프로 구단을 소유할 수 없는 금융법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K리그 승격을 거부했다. 그 후에 지역 축구 팬들끼리 '진정한 고양 시민의 팀을 만들자'고 해서 만든 게 '고양시민축구단'이다."

―지금 서포터스는 혼자인 걸로 아는데.

"대학교 1학년인 황민석군이라고 한 명 더 있다. 2008년에 팀이 창설되고 2009~2011년 군대 다녀오니 다 떠났더라. 고양시민축구단은 하위권으로 자주 지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왜 안 떠났나.

"배신하기 싫었다. 팀을 만들 때 기여했으니 내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마저 외면하면 선수들이 얼마나 쓸쓸하겠나. 나라도 열심히 응원해 선수들이 힘을 내 경기를 잘하면 예전처럼 팬들이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경기를 다 갔나.

"2012년부터 지금까지, 지난해 딱 한 경기, 장염으로 입원해 못 간 거 빼곤 다 갔다."

―관중석에서 혼자 응원한다는 것은.

"창피하기도 하다. 혼자서 하니 일부러 북을 치면서 한다. 팟캐스트도 운영한다. 내가 갑자기 죽게 되면 고양시민축구단의 팬 문화를 아는 사람이 사라지는 거니깐."

―언제부터 축구가 좋았나.

"어릴 때부터 좋았다. 초등학교 때 축구 교실에서 볼을 차는 게 유일한 행복이었다. 중학교 때 축구를 계속하고 싶어 했는데 집에서 반대했다. 그래서 축구 팬 활동을 하게 됐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붉은 악마 활동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독일월드컵도 보러 갔다고.

"조선일보 덕분이다. 당시 여비를 모아놨는데 학교에서 허락을 안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일보 1면에 붉은 악마 기사가 나면서 내 이름과 학교 이름이 나오자 허락해주셨다."

―지금 직업은.

"자동차 정비사다. 원래는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2005년에 심판 자격증도 땄다. 축구 기자도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보니깐 축구 관련 일을 하면 내가 보기 싫은 경기는 봐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팀 경기를 못 보는 상황이 생기더라. 그래서 차라리 기술을 익혀 돈을 번 다음 내가 좋아하는 경기를 보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응원해주는 단 한 명의 팬과 그에 대한 고마움을 90도 인사로 표현하는 선수. 화제가 된 그 세리머니를 조선일보 스튜디오에서 재연했다. 라씨가 들고 있는 머플러 속 글자 ‘울트라스 맥파이(ultras magpie·축구 극성팬+고양시 상징인 까치)’는 고양시민축구단 서포터스 이름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응원해주는 단 한 명의 팬과 그에 대한 고마움을 90도 인사로 표현하는 선수. 화제가 된 그 세리머니를 조선일보 스튜디오에서 재연했다. 라씨가 들고 있는 머플러 속 글자 ‘울트라스 맥파이(ultras magpie·축구 극성팬+고양시 상징인 까치)’는 고양시민축구단 서포터스 이름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축구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 축구를 보기 위해 돈을 번다. 구단에 매달 3만원씩 후원금을 내고, 연회비나 홈페이지 제작비 등이 필요하면 보탠다."

―앞으로의 꿈은.

"고양시민축구단의 K리그 승격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원래는 지역 노동자들이 만든 작은 팀이었다. 고양시민축구단도 언젠가 세계적인 명문팀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가는 팀마다 해체한 비운의 선수 '안명환'

―90도 인사 세리머니가 화제였다.

"경기 전 후배 한테 '오늘 형이 골 넣으면 서포터스님에게 90도 인사한다'고 말했다. 진짜 골을 넣자 달려갔다." ―선수에게 팬은 어떤 의미인가.

"경기를 누가 보는 것과 아무도 안 보는 것은 큰 차이다. 한 명의 팬이라도 보고 있으면 그 팬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고 무조건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언제부터 축구 선수 생활을 했나.

"초등학교 때부터다. 두 살 많은 형을 따라 축구팀에 들어갔다."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아버지가 중학교 때까지 아이스하키 선수를 하시다가 집안 사정 때문에 그만두셔서인지 '너희는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라'고 하셨다."

―고양시민축구단으로 오기 전 선수 시절은 어땠나.

"가는 소속팀마다 해체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초·중학교는 졸업하고 해체됐는데, 고등학교는 재학 중 해체됐다. 선수 생활을 계속하려고 전학을 갔는데, 거기서도 해체됐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라스로사스 유소년팀에 들어갔다. 거기서 스페인 4부 리그인 톨레도 B팀 정식 입단 제의를 받았는데 비자 문제가 생겼다. 중국으로 옮겨 3부 리그 입단 제안을 받았는데 중국축구협회 규정상 외국인이라 안 됐다. 5부 리그의 한 팀에서도 제안을 받았는데 입단 테스트 겸 치른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다."

―부상은 처음이었나.

"십자 인대가 파열될 정도로 큰 부상은 처음이었다. 중국에서는 말도 안 통하고 재활 치료도 잘 안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 6개월 동안 재활에만 매달렸다. 소속팀이 없다 보니 비용도 직접 부담했다. 이때 제일 많이 울었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처음으로 '축구를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다시 시작했나.

"병원에 누워 있을 때 2018 러시아월드컵이 열렸다. 경기를 보는데 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라운드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축구만 하고 살았는데 이대로 멈추기엔 너무 아쉬운 것 같고. 부모님에게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고양시민축구단에는 어떻게 입단했나.

"지난해 10월부터 형이 코치로 있는 고등학교 클럽팀 대한FC에서 같이 훈련도 하며 아이들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곳 감독님이 소개해주셨다."

―앞으로의 꿈은?

"프로리그에서 뛰고 싶다. 국내 축구리그도 승강제가 많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제이미 바디라고 잉글랜드 8부 리그인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 FC에서 시작해 현재 레스터 시티에서 뛰는 선수가 있다.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두 사람은 오늘(15일) 오후 5시 고양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릴 양주시민축구단과의 경기에서 또 팬과 선수로 만나겠다고 했다. 라씨는 "안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더라도 은퇴는 고양시민축구단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 선수는 "고양시민축구단 경기가 있는 곳이면 언제나 라씨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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