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자유 vs 억압' '민주 vs 전체주의' 국제대결로

입력 2019.06.14 03:00

中·홍콩, 폭도로 몰며 강경대응… 총기 형태 진압 장비도 첫 등장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허용 법안을 둘러싼 홍콩 시위 사태가 '자유 대(對) 억압' '민주 대 전체주의'의 국제 대결 구도로 변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홍콩 당국은 시위대를 '폭도'로 몰며 강경 대응했지만, 서구 각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리더들이 일제히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12일 홍콩 도심은 입법회(의회)의 법안 심의를 막으러 나온 수만명의 시위대가 외치는 "(범죄인 개정안) 철회" 구호로 귀가 먹먹했다. 홍콩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폭력적인 진압 작전에 나섰다. 방패와 곤봉, 헬멧과 방독면을 갖춘 경찰 틈에서 전담 요원들이 수시로 튀어나와 사격을 가했다. 홍콩에서 총기 형태의 진압 장비가 등장한 것은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이후 처음이었다.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이날 72명이 다쳤고, 머리를 다친 두 명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노한 홍콩 시민들은 13일 시내 곳곳에서 '홍콩 시민에 대한 사격을 중지하라'는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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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각) 홍콩 의회인 입법회 건물 인근 하코트로(路)에서 중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는 법안 반대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도로 위에 앉아 있다. 이날 시위에는 수만 명이 참여해 ‘법안 철회’ 구호를 외쳤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폭력 진압해 72명이 다쳤다. 홍콩에서 총기 형태의 진압 장비가 등장한 것은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이후 처음이었다. /AFP 연합뉴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은 전날 밤 배포한 동영상을 통해 시위 참가자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어떤 문명 법치 사회도 노골적으로 조직된 폭동으로 평화와 안녕을 해치는 위법 행위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13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가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홍콩HK01 등 매체들은 "홍콩 당국은 이번 시위를 동구권을 무너뜨렸던 '색깔 혁명'과 같은 성격으로 간주하면서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서구 지도자들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2일(현지 시각) "영국은 전(前) 식민지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은 영국·중국 공동선언에서 정한 권리 및 자유와 긴밀히 연결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도 "범죄인 인도법은 반체제 인사를 침묵시키기 위해 법을 짓누르고 홍콩민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뻔뻔한 의향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홍콩에서) 100만명이 시위를 했고 이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시위였다"며 "시위 이유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미 하원 제임스 맥거번 의원은 "평화로운 집회 참여자들이 홍콩 경찰의 끔찍한 폭력에 맞닥뜨리는 것에 대해 초당적인 분노가 있다"며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홍콩이 미국으로부터 무역과 경제의 특별대우를 받을 만한 자치권을 가졌는지 검토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EU(유럽연합)는 "홍콩 시민들은 집회결사 및 자유롭고 평화로운 의사표현이라는 기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홍콩 당국에 "집회의 자유를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호주 정부도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은 홍콩에 고도의 자치와 자유를 보장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홍콩 시위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 직접적인 이유이지만, 갈수록 노골화되는 중국의 내정간섭에 홍콩의 자유와 민주체제가 위협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행정장관 완전 직선제 등을 요구했던 민주화 시위) 이후 중국은 시위 지도자들을 하나둘씩 체포한 뒤 모두 감옥에 보내고 선거에서 뽑힌 민주파 인사들을 온갖 이유로 의회에서 쫓아냈다. 언론사와 비판 서적 출판사들도 잇따라 친중 자본에 넘어가, 언론의 자유도 갈수록 위축됐다.

이처럼 일국양제가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에 범인을 인도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면 반중 정치범은 중국으로 보내져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노골적으로 권위주의화하고 있는 중국이 이번 법안을 철회해 (대만이나 티베트 등) 다른 지역들에 나쁜 신호를 주는 선택을 할 리가 없다"고 전했다. "(중국과 서구) 가치 체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결국 서구가 민주주의와 법치 편에 서야 하고 그렇게 못한다면 서구는 더 이상 중국인들에게 대안으로서 자격을 상실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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