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듣고도… 원안위원장 저녁식사, 즉각 조치 안해

조선일보
입력 2019.06.14 01:31 | 수정 2019.06.17 15:39

[탈원전 2년의 늪] [8] 기강 무너진 원자력안전委

국무총리실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엄재식 위원장이 지난달 10일 '한빛 원전 1호기 열출력 급증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보고 받고도 개고기집에서 만찬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엄 위원장은 이날 사고 발생 시점인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5분까지 원안위 전체회의를 주재했지만, 해당 사고에 대해선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원전 가동 수동 중단 조치는 만찬 종료 후인 오후 9시 30분쯤에야 내려졌다.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는 원안위원장이 사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제때 대응하지도 못한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원장을 포함한 원안위원 중엔 원자력 전문가가 아무도 없고, 현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에 동조하는 성향의 위원들로만 구성돼 있어 긴급 상황에서 대응이 늦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회 출석한 엄재식 원안위원장과 한수원 사장·원자력안전기술원장 엄재식(가운데)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지난 1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위해 앉아 있다. 왼쪽부터 손재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엄 위원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국회 출석한 엄재식 원안위원장과 한수원 사장·원자력안전기술원장 - 엄재식(가운데)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지난 1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위해 앉아 있다. 왼쪽부터 손재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엄 위원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실이 원안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안위 실무자는 사고 당일인 지난달 10일 오전 10시 53분 '한빛 1호기 보조 급수펌프가 자동 기동됐다'는 구두 보고를 한수원으로부터 받았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한수원은 원안위에 즉시 보고해야 한다. 원안위가 한수원의 판단에 따라 원전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사실은 원안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즉시 보고되지 않았다. 당시 엄 위원장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5분까지 원안위 전체회의를 주재했지만, 한빛 원전 사고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사고 발생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원안위는 사고 발생 7시간 24분이 지난 오후 5시 55분에서야 위원들에게 사고 상황을 문자메시지로 보고했다.

하지만 위원장과 위원들은 사고 상황을 보고받은 뒤 바로 사고 대책을 논의하지도, 지침을 내리지도 않았다. 더구나 엄 위원장은 사고 상황을 인지한 뒤에도 서울 종로의 유명 보신탕집에서 만찬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엄 위원장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따르면, 엄 위원장은 오후 7시 58분 개고기집에서 16만9000원을 썼다. 업무추진비 사용 목적은 '원안위 회의 쟁점 사항 논의'라고 썼다. 원안위는 엄 위원장이 누구와 만찬 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5월 10일 한빛 원전 1호기 사고 당일 상황 정리 표

야당에서는 "원전 전문가가 아닌 위원장과 원안위원들이 보고를 받고도 사고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그러면서 야당 추천 몫의 위원은 모두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안위는 상임위원 2명(위원장, 사무처장)과 비상임위원 7명(위원장 제청 3명, 국회 추천 여당 2명·야당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은 청와대가 임명한다. 현재 원안위원은 상임위원 1명(엄재식 위원장), 비상임위원 4명 등 5명뿐이다. 이 중엔 원자력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 위원장은 사회복지학 전공이고, 위원은 화학과 교수, 탈핵 운동을 했던 민변 회장, 예방의학 전공 의대 교수, 지질학 교수 등이다.

앞서 엄 위원장은 지난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빛 원전 정지 결정이 늦어진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왜 (수동 정지 결정을) 미적거렸느냐"는 여당 의원의 질문에 "반성하고 있다. 관리 및 감독의 책임에 대해 통감한다"고 했다. 다만 원안위 관계자는 “당일 10시 53분쯤 보조급수펌프 자동기동 사건을 보고받아 원자력안전기술원 사건조사팀을 현장에 급파했는데, 사건조사팀은 조사과정에서 원자로 열출력이 약 18%까지 올라간 사실을 오후 6시쯤에 최초 확인했다"며 "이에 원안위 본부는 오후 6시 36분쯤 열출력 급상승 사실을 보고 받았고, 원안위가 오후 9시30분쯤 수동 정지를 지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가운데 김호철 원안위원이 지난 4월 30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석해 5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원안위 설치법은 '최근 3년 이내 원자력 이용자 또는 원자력 이용자 단체로부터 연구개발 과제를 수탁하거나 사업에 관여한 사람은 결격'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감사원은 "원자력연구원도 '원자력 이용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김 위원이 원안위원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김 위원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맡고 있다. 앞서 현 정부가 임명한 강정민 전 위원장은 원자력연구원 용역 연구에 참여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나 작년 10월 사퇴했다. 청와대는 또 한국당이 위원으로 추천한 이경우 교수에 대한 임명을 거부하면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회의에서 주관하는 간담회에 한 차례 참석해 회의비 25만원을 받은 것이 결격 사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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