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홍콩 100만 시위

조선일보
입력 2019.06.14 03:16

올 초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의 화웨이 본사로 취재 간 후배 기자는 그 압도적인 규모와 선진화된 연구시설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화웨이로 대표되는 선전은 중국의 기술 굴기(崛起)를 집약한 첨단 산업 도시다. 1980년 덩샤오핑이 작은 어촌이던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개혁·개방 전초기지로 삼았다. 경제적으로 월등 앞서 있던 홍콩 코앞에 만든 그 도시가 지난해 마침내 홍콩 GDP 규모를 넘어섰다. 홍콩과 선전은 고속철로 20분도 안 걸린다.

▶인구 740만명인 홍콩에서 지난 주말 100만명 시위가 벌어졌다. 홍콩 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引渡) 법안' 때문이다. 이 법안은 홍콩 청년이 대만에서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달아났는데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대만으로 송환할 수 없다는 게 발단이 됐다. 그런데 자칫 법을 개정했다가는 중국이 반체제 인사를 송환하는 억압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높다는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져 100만명 시위로까지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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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 사람들 사이에 쌓여온 중국에 대한 공포에 그 법안이 불을 댕긴 셈이다. 중국은 50년간 홍콩 체제를 인정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에 두 정치 제도)'를 선언했지만 홍콩 사람들의 체감 불안은 보통이 아니다. 중국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홍콩이 상대적 우월을 주장하기 힘들어졌다. 거기에다 홍콩의 언론 자유, 법치, 인권은 중국 수준으로 악화되어 간다는 위기감이 보태졌다.

▶2년 전 홍콩의 호텔 부호가 중국 공안에 50일간 구금돼 고문을 받다 숨졌다. 왜 구금됐고, 어떻게 사망했는지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가해 검찰관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1년 6개월 만에야 그 사실이 알려졌다. 작년에 중국의 반체제 소설가 마젠이 홍콩의 문학축제에 참가해 강연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취소됐다. 이유 없이 장소 대여가 무산됐다. 홍콩 정부가 외신기자클럽 부회장을 맡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홍콩 특파원을 추방하는 일도 벌어졌다. 반(反)중국 성향의 인사를 참석시킨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방 국가들의 홍콩 시위 지지가 이어진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시위였다. 이해한다"고 했다. 중국이 발끈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부 국가가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다. 홍콩 입법 문제에 외국 개입을 반대한다"고 했다. 선전의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체제 전쟁이 바로 옆 홍콩으로 옮아붙어 제2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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