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저질'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저질'이 돼선 안 된다

조선일보
입력 2019.06.14 03:17

치욕적 실패를 맛봤으면서도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없고 또 자신을 내려놓을 줄 모른다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자유한국당에 '막말 주의보'가 잠깐 내려졌다가 곧 막말의 고삐가 풀렸다. "야당의 무기(武器)는 말"인데 왜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상대를 겨냥한 그 무기가 자신을 찌르고 있는데도 이렇게 둔감하다.

며칠 전 한국당 대변인은 북유럽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천렵질에 정신 팔린 사람"이라고 했다. 당초 전하려는 비판 메시지는 실종되고 그 표현을 놓고 한바탕 맞붙었다. 그게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다고 당 이미지가 올라갔을 리는 없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은 대통령 내외가 경제는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또 '해외 관광'을 떠났다고들 말한다. 왜 이런 말을 듣는지 깊이 유념해달라"고만 해도 많은 사람이 알아들었을 것이다.

한국당은 청와대 권력을 향해 퍼부었지만 그 말의 수용자는 사실 청와대가 아니라 대중이다. 그 말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어야 권력자를 움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은 독한 말을 유능한 무기로 착각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 대변인 등이 서로 경쟁하듯 쏴댄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했다. 매일같이 말 펀치를 날리면 이는 그냥 반사적 소음(騷音)이 된다. 특히 황교안 대표는 제1 야당 대표로서 말의 중량감을 잃어버렸다. 매일 반복되면 뉴스가 될 리 없다. 대중이 그의 입을 쳐다보고 궁금해할 때 발언해야 힘을 얻는 것이다.

물론 극성 지지자들은 막말을 속시원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런 막말에 질린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당의 눈에는 안 보인다. 세상 사람들은 '나라를 이렇게까지 끌고 갈 줄 몰랐다'며 문재인을 찍은 자신에 대해 내심 민망해하다가 한국당의 막말이 터져나오면 '너희가 더 꼴 보기 싫다'며 고개 돌리는 것이다.

정권과 싸워야 하는 야당의 무기가 말이라면, 그 말이 어떻게 하면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권에 대한 공격의 말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느냐 못 얻느냐에 승부가 걸려 있다. 때로는 근거 사실을 제시하며 논리적이어야 하고, 때로는 풍자와 해학, 때로는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이 동원돼야 한다. 품격까지 갖추면 대중은 마치 자신의 귀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지 모른다.

한국당은 '막말 프레임'에 갇힌 것이 불리한 언론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단순 막말이 과장 보도돼 한국당을 그 프레임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막말로 따지면 민주당 의원들의 역사가 더 길다. 오히려 점잖았던 한국당이 저쪽에서 배운 게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저쪽처럼 돼서는 안 된다. 저질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저질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당을 이기려면 실력과 품격에서 좀 더 나아야 하고 뭔가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요즘 한국당은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성실한 국회 근무자도 아니다. 한때 장외투쟁에 나섰던 기억도 희미해졌다. 도대체 왜 했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국회는 안 열리고 있다. 그냥 놀고먹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비칠 뿐이다. 물론 한국당은 그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다. 국회를 열면 추경(追更) 예산을 통과시켜 '총선용'으로 세금을 퍼주겠다는 현 정권의 의도에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좌편향 이념 법안의 통과를 막으려면 현재는 국회를 안 여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정까지 알지 못하는 데 있다. 한국당은 정권의 통제에 놓인 언론 환경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면이 있어도 단지 정권의 통제 탓은 아니다. 이 언론 매체들은 한국당을 청산되지 않은 기득권 세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당은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위해 이런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 논쟁을 벌이고 설득하려는 열정을 보여준 적이 없다. 아무도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한국당을 대변해주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그 위세를 업고 행세하던 의원 중 단 한 명도 책임지고 그만두지 않았다. 그동안 나라를 걱정하는 일반 시민들과 보수 언론이 정권에 맞서 싸워온 덕에 한국당은 겨우 회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이들은 무임승차했다. 당 전체에 찍힌 낙인(烙印)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한국당이 먹고살 만해진 모양이다. 내부 갈등설도 다시 불거지고, 일부 의원은 총선 공천을 못 받을까 봐 미리 탈당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치욕적 실패를 맛봤으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없고, 또 자신을 내려놓을 줄도 모른다. 이러니 한낱 청와대 비서관들에게도 "국민들이 눈물을 훔치며 회초리를 드시는 어머니가 돼 위헌 정당 해산 청구라는 초강수를 두셨다고 생각한다"며 조롱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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