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처형장의 아이들

조선일보
입력 2019.06.13 03:16 | 수정 2019.06.13 04:18

2012년 여름 어느 날 오후 평양 외곽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에 평양 시내 대학생들이 가득 모였다. 잠시 후 눈가리개로 얼굴을 가리고 가슴팍에 커다란 명찰을 단 예술단원 10여명이 끌려왔다. 군인들이 한 사람씩 나무 말뚝에 묶은 뒤 바로 재판이 시작됐다. "이들은 성(性) 녹화물을 시청하고 그것을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인민의 이름으로 처형한다."

▶고사총을 실은 차량이 이들 40m쯤 앞에 섰다. "쏴!" 하는 명령이 떨어지자 구경 14.5㎜ 총신 4개가 한꺼번에 불을 뿜었다. 총신 하나에 60발씩, 한 사람당 총알 240발이 발사됐다. 처형이 끝나자 "이런 민족 반역자들은 공화국에 묻힐 곳이 없다"는 말과 함께 이미 산산조각 난 시신들을 탱크로 깔아뭉갠 뒤 화염방사기로 불 질렀다. 당시 목격자인 북한 대학생이 전한 공개 처형 장면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한 국제 인권 단체가 탈북민 610명을 심층 인터뷰해 북한의 공개 처형 장소 323곳을 공개했다. 함경북도가 200곳으로 가장 많았고 평양에도 4곳이나 있었다. 공개 처형은 강가나 공터, 밭, 운동장 등에서 벌어지는데 수백 명에서 많게는 1000명가량의 주민이 참관한다. 참관자들 맨 앞에 초등학생, 그 뒤엔 중·고교생, 맨 뒤엔 일반 주민이 선다고 한다. 탈북민 중 83%가 공개 처형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했고 참관 당시 일곱 살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북한의 일반적 공개 처형에서는 죄수 한 명에게 사격수 3명이 3발씩 총 9발을 쏜다. 죄수 입 안에는 돌멩이나 쇠뭉치를 쑤셔 넣어 아무 말도 못하게 한다. 가족이 반드시 참관해야 하는데, 슬퍼하거나 울면 그 역시 반역 행위로 처벌받는다. 오히려 "이 반역자, 왜 당을 배반했어?" 하며 비판해야 한다. 처형된 시신은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아무렇게나 암매장한다. 2005년 이런 공개 처형 장면이 몰래 녹화돼 전 세계에 공개된 뒤로는 주민들의 휴대전화를 모두 걸러낸다고 한다. 당시 동영상에도 처형장에 어린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북한의 공개 처형은 칼로 목을 치던 중세 암흑시대보다 더 잔인하다. 민주화 인권 운동을 했다는 현 정부의 통일연구원은 1996년부터 매년 펴내온 북한인권백서를 발간 사실도 알리지 않고 있다. 올해는 슬그머니 웹사이트에 올렸다가 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소리 없이 내려버렸다. 눈 감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