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올라왔지만, 4명은 돌아오지 못하고…

입력 2019.06.12 03:01

침몰 13일만에 헝가리 유람선 인양

11일 오전 6시 47분(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있는 머르기트 다리. 수상(水上) 크레인 '클라크 아담'호의 45m 높이 꼭대기에서 강물 속으로 드리워진 4개의 강철 와이어가 순간 팽팽해졌다. 지난달 29일 한국인 33명을 태우고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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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있는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인양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인 33명을 태운 채 침몰한 지 13일 만이다. 수상(水上) 크레인 '클라크아담'호는 이날 수심 6.7m 아래 놓여 있던 선체를 들어 올렸다. 이날 인양된 선체에서 4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됐고, 그중 3구가 한국인 시신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한국인 실종자는 4명으로 줄었다. /뉴시스
7시 12분, 찌그러진 흰색 조타실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침몰 13일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곳곳이 찌그러지고 유리창이 다 깨진 허블레아니호의 형체가 서서히 시야에 나타났다. 인양을 시작한 지 50분쯤 흐르자 조타실 높이가 수면에서 약 1m쯤인 작업용 바지선 갑판과 엇비슷해졌다. 헝가리 구조대원들이 재빨리 사다리를 옆으로 연결해 선체로 뛰어들더니 7시 43분 롬보스 라슬로(58) 선장의 시신을 조타실에서 밖으로 꺼냈다.

첫 시신 수습을 마치자마자 헝가리, 한국의 구조대원 2명씩 모두 4명이 다시 선체로 뛰어들어 민첩하게 갑판을 샅샅이 훑었다. 그중 한 명이 조타실 뒤쪽에서 지하 선실로 들어가는 문을 땄다. 그는 '여기로 오라'는 의미로 황급히 손짓했다. 한꺼번에 여러 구의 시신이 눈에 들어온 듯했다.

8시 4분 한국인 성인 여성 시신이 먼저 나왔다. 베이지색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3분 후 한눈에도 성인 절반 크기인 조그마한 시신 한 구를 구조대원이 품에 안고 나왔다. 허블레아니호에 오른 35명 중 유일한 미성년자인 김모(6)양이었다. 이어 8시 18분 다시 한국인 성인 여성 시신을 바지선으로 올렸다. 시신이 나올 때마다 사방에서 탄식소리가 들렸다.

11일(현지 시각)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인양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정밀 감식을 위해 바지선에 실려 인근 체펠섬으로 옮겨지고 있다.
섬으로 실려가는 허블레아니호 - 11일(현지 시각)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인양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정밀 감식을 위해 바지선에 실려 인근 체펠섬으로 옮겨지고 있다. /뉴시스
헝가리 측은 오후 1시 30분 거치용 바지선에 선체를 내려놓으며 6시간 43분에 걸친 인양 작업을 마쳤다. 전체 한국인 탑승자 33명 중 7명은 사고 직후 구조됐고, 7명은 사고 당일 사망한 채 발견됐다. 19명의 실종자 중 12명이 인양을 시작하기 전까지 시신으로 발견됐다. 7명의 행방을 모른 상황에서 인양에 들어갔지만 이날 김양 등 3구의 시신만 수습하면서 아직도 행방을 모르는 실종자가 넷 남았다.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온 허블레아니호는 사고 당시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2층 갑판 위에 씌워 있던 푸른색 방수포는 갈래갈래 찢겨 있었다. 선체 곳곳에 부유물이 엉겨붙어 어지러워 보였다.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구조대원들은 차분히 까만색 비닐에 싸서 들것에 실은 뒤 바지선에 올렸다. 그러면 시신 운반을 맡은 회색 방역복 차림의 한국·헝가리 구조대원 4명이 매번 시신에 거수경례를 했다. 시신을 옮기기에 앞서 고인(故人)에 대한 예의를 표시한 것이다. 시신은 보트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 신원을 확인했다.

헝가리 대테러청 관계자는 "지하 선실 입구에서 한꺼번에 발견된 3명은 선실에 있다가 배에 물이 차오르자 황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 다뉴브강에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평소에는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갑판에 나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고 당시에는 비를 피하려고 선실에 들어가 있던 한국인 승객이 여럿 있었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다.

◇유일한 미성년자 6세 여아 시신 수습

가장 어린 희생자인 김모(6)양의 시신이 수습되는 모습을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지켜보던 헝가리 대테러청의 한 대원은 "이럴 수가… 너무 어린것 같은데요"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김양은 인천에 사는 유치원생이다. 김양은 어머니(38), 외할아버지(62), 외할머니(60)와 함께 동유럽 여행을 왔고, 3대(代)에 걸친 이들 넷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김양은 자영업을 하느라 바쁜 어머니 대신 외할머니 손에 컸다. 이번 여행은 김양 어머니가 딸을 돌봐주는 친정 부모를 위한 '효도 관광'이었다. 사업을 하느라 바빠 여행에 동행하지 않은 김양의 아버지는 사고 발생 5시간 전에 딸과 통화했다. 김양 아버지는 사고 직후 본지와의 통화에서 "딸이 '엄마가 액체 괴물(반죽 형태 장난감)을 사줬다'고 좋아했다"며 "출국하는 날 일이 많아 공항에 배웅 나가지 못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11일 오전(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수습된 허블레아니호 실종자 시신을 향해 한국 신속대응팀과 헝가리 관계자가 경례하고 있다.
수습된 시신에 경례 - 11일 오전(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수습된 허블레아니호 실종자 시신을 향해 한국 신속대응팀과 헝가리 관계자가 경례하고 있다. 이날 양국 구조팀은 시신 4구를 수습했다. 이 중 1구는 최연소 탑승자인 6세 여아로 알려졌다. /뉴시스
◇선체 수색에도 4명은 행방 못 찾아

인양 작업은 한때 위기를 맞았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선체를 들어올리는 작업이 중단됐다. 가해 선박인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에 의해 들이받힌 뒷부분의 파손 정도가 심각해 선체가 파손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한 시간 가까이 머리를 맞댄 끝에 9시 30분쯤 와이어 한 개를 추가로 선미(船尾)에 걸어 다시 들어올렸다.

10시가 되자 선체가 거의 수면 위로 올라와 깨진 유리창 너머로 객실 내부까지 보였다. 한 시간가량 두꺼운 파이프를 선체에 집어넣어 물을 뺐다. 11시 6분 배수 작업이 완료되자 구조대원들이 헤드 램프가 달린 헬멧을 쓰고 객실로 들어가 필사적으로 의자며 바닥을 구석구석 손으로 짚어보며 시신을 찾았다. 그러나 추가 성과는 없었다.

오전 11시 23분이 되자 구조대원들은 뱃머리 아래에 있는 창고에 들어갔다. 선실을 다 뒤졌지만 시신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자 혹시나 해서 창고도 확인해본 것이었다. 더 이상 성과가 없자 11시 36분 크레인이 다시 육중한 기계음을 냈고, 오후 1시 30분 거치용 바지선 위에 선체를 내려놨다. 헝가리와 한국 공동 구조대는 헬기·고속정·드론·수색견을 동원해 실종자 시신을 찾는 수색을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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