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재인 케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다

조선일보
  • 임구일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사·前 경희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입력 2019.06.11 03:14

임구일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사·前 경희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임구일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사·前 경희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얼마 전 중소병원협회 세미나에서 한 대학병원장의 발표가 인상 깊었다. 3차 종합병원들은 정부의 급여화 확대 정책으로 환자들이 밀려드는 바람에 사상 최대 수입을 올렸지만 인력·장비·시설 부족 현상이 심화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 실시 이후 전국 42개 상급 종합병원의 진료비 증가율은 경이롭다. 상급 종합병원 총진료비는 2016년 10조5400억원에서 작년 14조670억원으로 33.5%나 증가했다. 특히 '빅5' 병원은 4조8559억원에 달해 전체 상급 종합병원의 34.5%를 차지했다. 예전의 비급여 금액이 급여화된 부분이 있어 금액 증가분이 순수한 매출 증가 때문이라고 볼 순 없지만, 빅5 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MRI(자기공명장치) 건강보험 적용 등 정부의 의료 정책은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의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선 환자 쏠림 현상이다. 우리 의료 체계는 1·2·3차 의료 기관이 각각 고유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구분이 무너져 의료체계가 유명무실해져 있는 상태다. 취약한 시스템을 그나마 유지시킨 장벽은 가격이었다. 1차보다는 2차가, 2차보다는 3차 의료 기관이 더 비싸다는 인식이 환자들의 상급 종합병원행을 그나마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는 이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현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으로 대형 병원을 가면 진료비를 더 할인받는 구조가 된 현실은 대형 병원에 안 가면 손해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대형 병원을 확대해서 해결할 수 없다. 의원과 중소 병원의 폐업으로 의료 전달 체계가 붕괴하고, 한편으론 중증 희귀 질환을 중점적으로 봐야 할 상급 종합병원들이 많은 경증 환자에 치여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고 있다. 이것은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 전환이 된다는 것보다 더 본질적 문제이다. 1977년 의료보험이 탄생한 이후 지금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박리다매형 진료가 이제는 대학병원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환자를 빨리 봐야 하는 저가격, 대량 공급의 의료 산업구조는 지양해야 할 정책이다. 필자가 참여한 2011년도 보건의료미래위원회는 '2020 한국 의료의 비전과 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우리 의료는 양적 공급 위주 정책을 지양하고 의료 자원의 분포와 질 제고를 고려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급격한 급여화 정책은 저수가, 저급여, 저부담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보다 급여 확대와 환자 쏠림, 의료 이용 증가, 재정 적자, 수가 억제와 보험료 부담이라는 더욱 복잡한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아무런 통제 없이 의료 쇼핑을 부추기는 급격한 비급여의 급여화는 결국 국민, 공급자, 정부 누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제는 양적 성장보다 질적 향상을 지향하는 건강보험의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인구구조와 산업구조의 변화, 4차 산업에 대비한 바이오 헬스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 토양이 되는 건강보험의 구조와 재정 정책의 세밀한 조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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