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미용실 개조해 식당 열고, 마음 씻는 목욕탕 차리고… 쉬러 온 목포에 줄줄이 눌러앉았다

입력 2019.06.11 03:01

[청년이 지역을 살린다] (1) 목포 '괜찮아마을'

전라남도 목포 구도심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괜찮아마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은 이곳 주민으로 지내며 지역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사진은 팝업 갤러리로 변신한 구도심의 수퍼마켓 앞에서 괜찮아마을 청년들과 지역 어르신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전라남도 목포 구도심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괜찮아마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은 이곳 주민으로 지내며 지역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사진은 팝업 갤러리로 변신한 구도심의 수퍼마켓 앞에서 괜찮아마을 청년들과 지역 어르신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 공장공장 제공
"괜찮아, 어차피 인생 반짝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고 위로를 건네는 수상한 마을이 있다. 전라남도 목포 구도심에 둥지를 튼 '괜찮아마을'이다. 일상에 지친 청년들은 6주 동안 괜찮아마을 주민이 돼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주변 지역을 여행한다. 셰어하우스에서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과 함께 밥을 지어 먹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온도를 높인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에 과감히 도전하며 새로운 꿈을 꿀 힘을 얻어간다.

괜찮아마을은 박명호(32)·홍동우(33)씨가 세운 문화기획사 '공장공장'이 시작한 프로젝트다. 홍 대표는 "전국 일주 여행사를 운영하며 불안한 미래와 멀어져 가는 꿈 앞에 힘겨워하는 청년을 여럿 만났다"면서 "이들이 '쉬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총 60명의 '안 괜찮은' 청년들이 마을에 들어와 인생을 재설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괜찮아마을' 찾은 청년들, 절반이 목포에 남아

괜찮아마을 주민들의 일상은 느슨하면서도 바쁘게 돌아간다. ▲집단 상담 ▲주변 섬 탐험 ▲목포의 숨은 자원을 발굴·수집하는 커뮤니티 맵핑 ▲도시 재생 강연 ▲빈집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설계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나둘 소화하다 보면 6주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홍 대표는 "늘 뭔가 생산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온 밀레니얼 세대들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스스로 잉여 인간이 됐다고 좌절한다"면서 "쉬면서도 하루하루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적당히 등 떠미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고 했다.

적당히 등을 떠밀린 청년들은 숨어 있던 기획자 정신을 마음껏 발휘했다. ▲목포의 명물 홍어에 와사비 소스를 곁들인 홍어빵 ▲목포 다순구미 마을 어르신이 폐그물로 만든 수공예품 ▲남도 섬의 자생식물과 소금으로 만든 천연 화장품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사업 아이템들이 쏟아졌다. ▲목포 사람들 인물 사진전 ▲목포 구도심의 수퍼마켓 아카이빙 전시회 등 지역 콘텐츠로 채워진 행사를 직접 기획해 열기도 했다.

괜찮아마을에 머물렀던 청년 60명 중 23명은 6주 후에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목포에 남았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탐색하는 이들도 있고 일자리를 찾은 이들도 있다. 지역의 독립 영화관, 법무법인에 취직하거나 구도심의 빈 점포를 싸게 얻어 카페, 공방을 차렸다. 공방 '안목'을 운영하는 김종혁씨는 "목포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제게는 전혀 새로운 소재여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며 "또 주변을 잘 아시는 어르신들께 필요한 재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여쭤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김씨는 목포시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와 함께 항구 근처 수산물 위판장에서 수거한 나무 상자를 활용해 원도심 가게들의 입간판을 만들거나 빈 수퍼마켓 공간을 팝업 갤러리로 꾸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몇몇은 괜찮아마을을 함께 꾸려가는 공장공장 식구가 됐다. 건축 전문지 기자였던 김리오씨는 경력을 살려 공장공장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섬'을 비롯해 각종 출판물의 기획을 맡고 있다. 김씨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며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이 있고, 내가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삶의 질이 높아진 것도 큰 매력이다. 김씨는 "창문 너머 바다가 보이고, 혼자 쓰는 옥탑방이 딸린 집에서 살고 있다"며 "지금 내는 월세로는 서울에선 손바닥만 한 원룸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목포 최초 채식 식당, 마음 씻는 목욕탕… 조금씩 커지는 괜찮아마을

괜찮아마을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목포에 남은 괜찮아마을 주민 중 상상 속 프로젝트를 현실로 옮기는 이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 문을 연 목포 최초 채식 식당 '최소한끼'는 괜찮아마을 1기 주민 네 사람의 공동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미용실을 디자인 전공자인 네 사람이 아늑하고 모던한 식당으로 변신시켰다. 최소한끼 운영진인 박민지씨는 "혼자였다면 절대 목포에서 채식 식당을 열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양한 역량을 갖춘 능력자들과 협력한 덕분에 이렇게 빨리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몸 대신 마음을 씻는 목욕탕인 '세심사'도 곧 문을 연다. 1기 주민 세 사람이 기획한 예술 치유 프로그램으로, 글을 필사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속 고민을 털어내는 식이다. 홍동우 대표는 "괜찮아마을 안에 공장공장을 비롯해 최소한끼, 세심사 등 다양한 경제 공동체가 생겨나게 되면 더 많은 청년이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청년들이 서로 가진 재능과 지식을 나누며 성장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적정 수준의 돈도 벌 수 있는 대안 공동체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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