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00t 미만 식량 지원은 받지말라"

조선일보
입력 2019.06.07 03:30

美 민간단체 25t 준다하자 퇴짜… RFA "소규모 지원은 거절 지침"
北매체 거듭 "평양 백화점 성황" 식량난? 장마당 쌀값 올 16% 하락

북한이 300t 미만의 소규모 식량 지원은 받아들이지 말라는 지침을 각 지방 부서에 하달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은 또 대내 매체를 통해 최근 개장한 평양 대성백화점이 "날마다 손님들로 흥성인다"며 '자력갱생의 상징'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 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며 택한 '자력갱생' 노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처럼 북 스스로 '제재 무용론'을 강조하는 바람에 대북 인도적 지원의 시급성을 주장하는 정부·여당의 논리가 힘을 잃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 군인가족과 기념 촬영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인민무력성에서 군복 차림의 어린이, 한복 차림의 여성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일 열린 ‘조선인민군 제2기 제7차 군인 가족 예술소조 경연’의 입상자들이다.
김정은, 군인가족과 기념 촬영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인민무력성에서 군복 차림의 어린이, 한복 차림의 여성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일 열린 ‘조선인민군 제2기 제7차 군인 가족 예술소조 경연’의 입상자들이다. /조선중앙TV 뉴시스

함경북도 소식통은 지난 4일 RFA에 "지난달 하순 중앙에서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산하 해외동포영접국에 해외 민간단체의 지원 규칙이라는 것을 하달했다"며 "국제 민간단체가 식량 지원을 제안해올 경우 300t 이상이 아니면 지원받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소식통도 "지난 5월 중순 미국의 민간단체 '크리스'가 식량 지원 의사를 밝혀왔다"며 "그러나 크리스가 지원하겠다는 식량이 25t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바로 거절당했다"고 했다. 북한 당국은 해외 민간단체와의 잦은 접촉이 '사상 교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 같은 방침을 세웠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엔 한국 민간단체의 '분유 21t', '영양밥 3t' 등 소규모 지원을 받아들였다. RFA 보도가 사실이라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 당국이 외부 지원을 선별해 받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외부 지원을 가려 받는다는 건 북한 식량난이 최악 수준은 아니거나, 정권의 자존심이 인민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5일 '인민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 제 힘으로 흥할 내일을 본다'는 글에서 지난 4월 개장한 평양 대성백화점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수십만명의 손님들이 찾아온 백화점에 상품의 가짓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조선을 알고 싶어 세계의 벗들이 온다"고 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대성백화점을 김정은의 업적으로 내세우면서 북한의 정책 기조인 '자력갱생'을 상징하는 곳으로 선전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실제 이 매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세 차례 이곳을 찾았다는 사실을 전하며 "(백화점은) 원수들의 그 어떤 방해 책동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의 산물"이라고 했다.

북한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내핍'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정부·여권은 인도적 지원을 밀어붙이려는 듯한 모습이다. 정부가 '800만달러 국제기구 공여' 외에도 국제기구를 통해 식량 5만t의 대북 지원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최근 여당 고위 인사의 발언으로 알려졌다.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도 잇달아 인도적 지원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 장마당 쌀값이 올 초 1㎏당 5000원에서 4월 말 4200원으로 오히려 떨어진 사실이 알려지는 등 식량난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최근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쏘고 김정은도 군수공장 시찰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북 지원에 매달리는 인상을 풍기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균열을 낼 뿐 아니라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는 "정부와 일부 국제기구는 북한 식량난이 당장 심각하다고 주장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정황도 여럿 발견된다"며 "인도적 지원을 검토는 해야겠지만, 제재 국면에서의 부작용 역시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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