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6·25당시 北장관… 1958년 권력투쟁때 숙청

조선일보
입력 2019.06.07 03:02

일제땐 임시정부 해체운동 벌여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좌우 합작'의 상징으로 꼽은 김원봉(1898~1958)은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 수립에 관여했고 6·25전쟁 때는 상(相·장관)을 지냈다. 김일성으로부터 '조국 해방 전쟁(6·25)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다.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 창단에 참여했고 이후 의백(단장)을 지냈다. 의열단은 일제 고위 관료·군인·경찰 등을 상대로 암살·파괴 공작을 벌였다. 김원봉은 1930년대 임정 해체 운동을 벌이는 등 임정과도 긴장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1938년 자신이 결성한 조선의용대 대원 다수가 중국 공산당으로 옮기자 남은 대원들과 임정에 합류했다.

김원봉은 1948년 4월 월북해 같은 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 격)으로 선출됐다. 그해 9월 북한 정권이 수립되자 초대 내각 국가검열상에 올랐고, 6·25전쟁 중이던 1952년 노동상이 됐다. 그는 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국회 부의장 격)까지 올랐지만 1958년 숙청됐다.

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함께 언급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37년 결성된 무정부주의 성향의 항일운동 단체 '조선혁명자연맹'이 만든 군사 조직으로, 1941년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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