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가 이어 향나무 校木까지 '친일 딱지'

입력 2019.06.07 03:02 | 수정 2019.06.07 15:29

제주교육청 "조례 통과땐 제거 검토"
시민단체, 학교 찾아와 "친일인사 흉상·기념비 없애라"

전국 곳곳에서 '교육계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이 벌어지면서 학교들이 혼란에 빠졌다. 좌파 시민·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전교조·시민 단체들이 "친일 인사가 만든 교가를 바꾸라" "비석을 없애라"고 개별 학교에 압력을 넣고, 좌파 교육감들은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일부 교육청은 일본산 향나무 교목(校木)까지 '일제 잔재'라며 청산 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의회는 전국 최초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조례를 만들고 있다. 지난달 30일 제주도의회에 발의된 '일제강점기 식민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안'은 교육감이 학교 식민 잔재 청산 정책을 수립하고, 실태 조사 등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주교육청 관계자는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있지만, 조례가 통과돼 법적 근거가 생기면 교육감이 바뀌거나 동문회, 지역에서 반대해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제주도교육청이 일제 잔재라고 분류한 항목엔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도 있다. 도교육청은 전체 학교 중 향나무를 교목으로 둔 곳이 21곳이고, 총 2157그루 심어져 있다고 밝혔다.

제주도교육청 측은 "조례가 통과되면 매년 친일 잔재를 조사해 청산하겠다"며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향나무 제거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광주제일고는 최근 교가(校歌)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올 초 광주광역시와 광주교육청이 이 학교 교가를 작곡한 이흥렬(1909~1980)씨가 친일 인사라며 교가 교체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이흥렬은 동요 '섬집아기'와 군가 '진짜사나이'를 남긴 대표적인 20세기 작곡가지만, 일제 말기 군국 가요를 연주·반주·지휘했다는 이유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일부 동문이 "사람은 공과가 함께 있기 마련인데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불러온 교가를 없애면 되겠느냐"고 반발했지만, 학교 측은 학생·교직원·총동문회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한 뒤 교가 교체를 결정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한발 더 나아가 "교가뿐 아니라 친일 인사 비석도 없애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광주제일고 교정에는 일제시대 기업인 지정선(1905~?)씨가 장학금을 낸 데 감사하는 기념비가 서 있는데, 이를 철거하란 주장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지난달 페이스북에 "오호통재라!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도 모자라 친일 반민족 행위자 기념비가 반세기가 넘도록 서 있다니"라는 글을 띄웠다. 이후 여러 인사가 학교에 직간접적으로 비석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측은 당황하고 있다. 광주제일고 측은 비석을 완전히 철거하는 대신, 해당 인물에 대한 공과(功過) 설명을 함께 게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부산의 경남고도 몸살을 앓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2009년 교내에 설치된 이 학교 초대 교장 안용백(1901~ 1977)씨의 흉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소는 지난 수년간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매국노로 키우려는가' 등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결국 학교 측은 지난해 흉상 아래에 해당 인물의 친일 이력 설명을 추가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경남고 앞에서 시위를 열고 "흉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부산교육청도 이 학교에 "경남고 흉상을 없애달라는 민원이 많다.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경남고 측 관계자는 "일부 인사가 학교에 찾아와 흉상을 철거하라고 항의도 했다"면서 "결국 흉상을 철거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소위 '교육계 친일 청산'은 좌파 시민·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이슈를 던지면 전교조 등이 달려들어 학교 앞에서 시위하고, 좌파 교육감이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광주광역시 학교를 중심으로 문제가 되더니, 최근엔 부산, 제주 등 전국으로 확대하는 분위기다. 서울 지역 한 고교 교장은 "친일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 시민단체나 교육감들의 행위는 자기들 잣대로 판단해 '무조건 없애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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