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정부의 국민 눈 속이기

조선일보
입력 2019.06.07 03:16

베트남 전쟁 당시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은 하버드대 MBA, 포드사 사장 출신답게 '통계'를 중시했다. 그는 '적군 사망자 수'를 전세(戰勢) 판단 지표로 삼았다. 눈치 9단인 전투 부대장들이 성과를 과장 보고하기 시작했다. 적군 사망자 수가 한 해 30만명 선까지 올라갔다. 뒤늦게 엉터리라는 걸 깨달았다.

▶소련 붕괴의 주 요인 중 하나는 통계 왜곡이었다. 중앙 정부의 획일적 곡물 수확량 책정과 집단농장의 엉터리 보고로 매년 '통계 풍년(豊年)'을 기록했지만, 빵 배급소의 줄은 나날이 길어졌다. 공식 통계론 50여년간 연평균 9%라는 경이적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했다. 그리스는 2000년에 유로존 가입 심사를 받을 때 재정 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6%(실제로는 12.5%)라고 허위 신고했다. 10년 뒤 EU(유럽연합)의 회계 실사에서 조작이 들통났다. 국가 부도 위기로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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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대 마티네즈 교수는 국가의 통계 분식(粉飾)을 잡아내기 위해 인공위성이 촬영한 특정 국가의 야간 불빛 변동 폭과 그 나라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GDP 성장률 간 차이를 분석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그의 결론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불빛이 10% 밝아질 때 GDP가 2.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독재 정권은 2.9~3.4% 높아진다'는 것이다. 독재국가일수록 지도자, 정부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GDP 부풀리기' 조작을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숫자 왜곡은 거의 습관이 된 지경에 이르렀다. 그제 발표된 7년 만의 경상수지 적자에 대해 정부는 외국인 배당금 탓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 4월 배당금(68억달러)은 작년 4월 배당금보다 10억달러가량 적었다. 정부는 작년 8월 저소득층 소득이 격감했을 때 표본 가구 개편에 따른 '통계 착시' 때문이라고 했다. 그 표본 그대로 조사한 올 1분기 가계소득 수치는 처참했다. 소득 하위 20% 가구 근로소득이 14.5%나 줄었다.

▶정부는 이제 숫자 감추기로 전술을 바꿨다. 내년부터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6개월간 월 50만원씩 현금을 지급한다는 '구직촉진수당' 정책을 발표하면서 2~3년 뒤 소요 예산은 "계산하기 어렵다"고 입을 다물었다. 올 초엔 취약 계층 빚 95% 탕감해 주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총액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앞으로도 수조, 수십조원씩 드는 포퓰리즘 정책을 발표하면서 '총액'은 "모르겠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고생이 많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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