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누가 5년짜리 정권에 국가 운명 뒤엎을 권한 줬나

조선일보
입력 2019.06.07 03:17

5년 시한부 정권이 국정 온갖 곳에 이념의 대못을 박아
대한민국의 진로를 돌이킬 수 없도록 영구히 뒤집으려 하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우리의 국가 위상은 도처에서 '코리아 패싱(건너뛰기)'을 당하는 지경까지 갔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일본에서 당한 푸대접이 기가 막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한 3~6선(選) 고참 의원 5명이 갔는데 일본에선 달랑 초선 의원 한 명이 응대했다. 아베 총리는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 연설엔 '한국'이 딱 한 번 등장하는데, 북한 문제를 설명할 때였다. 50년간 거르지 않던 '한·일 경제인 회의'를 돌연 연기시킨 것도 일본이었다. 한국을 무시해도 되는 나라, 때려도 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의 무례와 오만은 괘씸하지만 빌미를 준 것이 우리다. 이 지경까지 이른 외교 파탄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본뿐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일본 방문 길에 한국도 들러달라는 우리 요청을 거절했다. 화려한 밀월(蜜月) 퍼포먼스 속에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은 없었다. 트럼프는 일본 군함에 올라 동해를 "일본해"라 불렀고, 한·미 동맹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는 얼마 전 한국을 지목해 "미국을 싫어하는 나라"라고 했었다. 정말로 미국 대통령 마음속에 한국의 이미지가 이렇게 각인돼 있다면 끔찍한 재앙에 다름없다. 북한에 매달리며 동맹과 우방을 홀대한 단세포 외교가 국가적 참사로 돌아왔다. 땅에 떨어진 국가 위상을 되돌리려면 오랜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나라 꼴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현실을 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국력은 하락세다. 경제 활력이 쪼그라들고 성장 동력은 위축됐으며 미래는 불투명하다. 외교·안보, 거시경제에서 산업·기술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좋은 것이 없다. 이렇게까지 온갖 부문이 일제히 내리막 친 적이 있었나 싶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이 모든 상황이 일시적 후퇴나 과도기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은 '대못'을 박는 일이다. 국정 각 분야에 이념의 철심을 꽂아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원상 회복 못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꾸고 국가 진로를 비(非)가역적으로 뒤집겠다는 것이다.

2년 전 정부가 '마차가 말을 끄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들고 나왔을 때 경제학자들은 경악했다. 수많은 역설이 나타나고 부작용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왜 그토록 집착하는지 이유를 아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득 주도론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의 권력 이동을 위한 이념의 대못이었다. 노동 권력과 좌파 세력이 중심이 되는 경제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민노총이 활개치고 참여연대가 득세하는 세상을 보고 있다. 노조원들이 경찰을 폭행하고 주총을 막고 건설 공사를 멈춰 세우는 민노총 천국이 펼쳐졌다. 이념으로 무장한 운동권 출신과 얼치기 전문가들이 경제 운영의 중심 세력이 됐다. 이것이 정권이 바라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국민 살림살이가 나빠지고 서민 경제가 무너졌으며 경제는 침체로 빠져들었다. 한번 무너진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다시 회복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 정권이 깊숙이 박은 반기업·노동 편향의 대못을 뽑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국가 백년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뒤집으려는 정권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탈원전 대못은 세계 최강이라던 한국의 원전 생태계를 붕괴시켰다. 원전 부품사들이 문을 닫고 핵심 인력들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부터는 자력으로 원전을 짓지 못하는 나라로 전락할 것이라고 한다. 설사 다음 정권이 탈원전을 포기하더라도 원상 회복엔 긴 세월과 천문학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5년 지나면 퇴장할 정부가 무슨 권리로 이런 자해극을 감행하는가.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를 '혁명 정부'로 착각하고 있다. 촛불 혁명에 의해 혁명적 권한을 받은 듯 행세하고 있다. 그래서 국정 운영도, 적폐 청산도 혁명하듯 마구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촛불 민심이 들고 일어났던 것은 좌파 이념 혁명을 원했기 때문은 아니다. 국정의 혁명적 파괴를 바란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정권은 입만 열면 '촛불 정신'을 내세우면서 행동은 거꾸로 간다. 온 국민이 폐기를 요구한 국정 불통과 진영 가르기, 패거리 정치는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 촛불 민심과 거리가 먼 엉뚱한 방향으로 나라를 몰아넣고 있다. 국민 뜻은 묻지도 않고 국정 곳곳에 이념의 대못을 박고 있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축적된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그것을 한두 마디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무시당하고 쪼그라들고 쇠약한 나라를 만들자는 데 동의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누가 5년짜리 정권에 국가 운명을 마음대로 뒤집을 권한을 주었나. 누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라고 위임해주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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