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김원봉 영화 보고 '포상' 언급...집권 후 서훈 추진

입력 2019.06.06 12:24 | 수정 2019.06.06 18:42

文대통령, 野 대표 시절 김원봉 등장 영화 보고 페북에 "남북 체제 경쟁 끝났으니 독립 유공자 포상 더 여유 가져도"
현 정권 출범 후 국가보훈처,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방안 내부 검토…처음엔 "서훈 검토 않는다"더니 최근엔 "가능성 있다"
지난 5월부터는 지상파서 김원봉 등장한 20부작 드라마 방영

지난 3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제2관에서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국립여성사전시관 특별기획전 서울전'이 개막했다. 사진은 의열단원 박차정(왼쪽)과 의열단장 김원봉의 결혼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제2관에서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국립여성사전시관 특별기획전 서울전'이 개막했다. 사진은 의열단원 박차정(왼쪽)과 의열단장 김원봉의 결혼사진./연합뉴스
6·25 전쟁 이후 남북 모두에서 외면당한 김원봉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재평가는 표면적으로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시작됐다. 그해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 '암살'을 보고 "남북 간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 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 글에서 "광복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썼다. 문 대통령의 당시 이 발언은 김원봉의 의열단 활동이 영화에서 부각되면서 좌우에서 버림받은 좌파 독립운동가를 더 큰 틀에서 보듬자는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 김원봉을 공식석상에서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현 정부 출범 후 국가보훈처가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서훈(敍勳)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보훈처는 김원봉에 대해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유공자 현행 심사 기준에 따라 서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피우진 보훈처장은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김원봉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서훈할 것이냐'는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 질의에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의견을 수렴 중이며 (서훈 수여)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논란을 의식해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던 종전 입장에서 가능성을 열어둔 쪽으로 바뀐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지난 4월1일 보훈처는 '김원봉 독립운동 업적'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지난 4월 1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에 대한 현재적 검토'라는 제목의 학술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은 토론회장을 찾아 '서훈으로 가기 위한 짜맞추기식 토론회'라며 강하게 항의하고 토론회를 지켜봤다./연합뉴스
지난 4월 1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에 대한 현재적 검토'라는 제목의 학술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은 토론회장을 찾아 "서훈으로 가기 위한 짜맞추기식 토론회"라며 강하게 항의하고 토론회를 지켜봤다./연합뉴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5월 김원봉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세미나에 참석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독립운동에 나섰던 사회주의자들을 독립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포용성을 확인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또 한 지상파 방송에선 지난 5월부터 김원봉을 소재로한 20부작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직접 김원봉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를 위한 사회 저변의 변화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될 만한 발언을 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라는 표현과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親日) 잔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핵심 키워드가 친일과 '빨갱이'였고, 김원봉은 이런 잔재에 갇혀 평가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란 기준에 꼭 들어맞는다.

문 대통령이 이날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고 언급한 것도 현 정부 들어 김원봉 재평가 움직임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김원봉 서훈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남한 정부가 먼저 월북 독립운동가에 대한 상훈을 개방한다면 통일 대한민국의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좌우,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독립운동가를 재평가하고 포용함으로써, 나아가 남북 분단체제 극복의 기반을 다지자는 논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원봉 서훈을 반대하는 쪽에선 현 정부의 이런 흐름이 시기적으로도 성급할 뿐 아니라 여러 사실 관계나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을 없애려는 6·25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독립유공자에게 주는 '독립 유공자 훈장'은 건국(建國) 훈장을 의미한다. 독립운동을 건국의 한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상훈법11조는 건국 훈장에 대해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부에선 김원봉이 김일성에게 숙청됐기 때문에 한국이 보듬을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그가 김일성에게 숙청된 것은 북한 체제 내부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의 결과일 뿐, 독립운동이나 대한민국 국익과 관련한 활동 때문이 아니란 점에서 타당성이 없는 주장이란 반론이 있다. 김원봉 서훈을 반대하는 쪽에선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체제 경쟁이 끝났다는 논리로 북 정권 수립에 공을 세우고 대한민국을 향해 총을 들었던 김원봉 서훈을 밀어붙이는 의도를 두고서도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4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피우진 보훈처장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피우진 보훈처장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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