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101] 도스토옙스키와 '전당포에 맡긴 물건들'

조선일보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2019.06.0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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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의 후끈한 열기, 룰렛 테이블에 쌓인 금화, 전두엽을 스치는 파멸 예감, 흥분으로 뛰는 심장 박동…. 룰렛 게임에서 마지막 판돈을 털린 뒤 사내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스러운 안나, 나의 벗, 나의 아내, 제발 나를 용서해 주구려. 당신이 보내준 돈을 몽땅 다 잃었소. 어제 받은 돈을 바로 어제 잃었구려."

당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을 쓴 작가, 톨스토이·괴테와 더불어 '대문호'라는 칭호를 받은 작가, 과시용 소비와 가족의 빚, 도박 중독으로 늘 빚 독촉과 가난에 옥죄인 채 살았던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 그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백치' 등은 불후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도스토옙스키는 모스크바에서 빈민 구제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24세 때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격찬을 받지만 몇 해 뒤 반체제 지식인의 '금요 모임'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 직전에 감형받고 10년 동안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동업으로 잡지사를 운영하던 형이 죽자 빚과 유가족 생계를 떠맡았다. 아무리 소설을 써도 빚을 갚고 군식구의 생활비를 대기엔 부족했다. 1867년 4월 14일 해외로 도피했다. 국외 체류자로 제노바, 베를린, 드레스덴, 프라하, 밀라노 등을 떠돌 때도 룰렛 도박은 끊지 못했다. 도박 밑천을 마련하려고 결혼 반지, 아내의 옷, 신발, 모자 따위를 전당포에 맡기곤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은 사형선고, 도박 과몰입과 뇌전증 발작 등으로 불행했다. 그는 불행과 싸우는 내내 죄와 욕망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렸다. 45세 때 만난 속기사 양성 학원 출신의 두 번째 아내 안나가 없었다면 그의 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살하겠다는 그를 보듬고, 구술하는 소설을 받아쓰며, 그가 작품 집필을 이어나가게 한 것도 바로 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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