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의 아웃룩] 김원봉 敍勳은 통일 이후에 검토할 일이다

조선일보
입력 2019.06.05 03:14

독립에서 '해방'은 전반전, '건국'은 후반전
해방된 조국에서 건국 사투 벌이는 순간에 대한민국 아닌 다른 나라 선택한 인물 서훈은 국가 정체성 해체하려는 노림수 아닌가

이선민 선임기자
이선민 선임기자
보훈(報勳) 정책은 과거의 애국에 대한 보상일 뿐 아니라 국가 정체성 확립, 그리고 미래와 연결된다. 국가를 위해 삶을 바친 사람을 포상하고 보답하는 것은 '기억의 정치'를 통해 국가가 존속하고 발전하는 토대가 된다. 특히 나라를 잃었다 되찾은 경우 독립을 위해 희생한 유공자에 대한 예우(禮遇)는 국민의 충성심을 유도하고 국가의 정신적 기초를 다지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독립과 건국 과정이 이념 차이로 갈등이 심했던 경우 보훈 정책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들이 1920년대 이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로 나누어졌고, 해방 후 건국 노선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한 끝에 결국 갈라서서 두 정부를 세웠으며, 마침내 총과 대포를 들고 서로 싸웠던 한국은 극단적 사례이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독립운동가 서훈(敍勳) 제도가 만들어지고, 5·16 쿠데타 후 독립 유공자 보훈이 본격화한 뒤에도 좌파 독립운동가들이 오랫동안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現 정부, 좌파 독립운동가 서훈 마지막 장벽 무너뜨리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월 국가보훈처는 독립 유공자 서훈에서 제외해 온 심사 기준 가운데 '공산주의자' 조항을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활동에 주력했거나 적극 동조한 자'로 바꾸었다. 이로써 좌파 독립운동가도 해방 후에 공산주의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독립 유공자 서훈이 가능하게 됐다. 그해 3·1절에 여운형 등 54명이 훈·포장을 받았고, 광복절에는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 주인공 김산(장지락) 등 47명이 서훈받았다. 그 뒤에도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내였던 주세죽, 심지어 김일성의 삼촌 김형권과 외삼촌 강진석까지 독립 유공자로 서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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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9월 북한 정권이 수립된 직후의 수뇌부 모습. 오른쪽 끝에 수상 김일성이 있고, 그 왼쪽으로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 국가검열상 김원봉이 보인다. /한국학중앙연구회
문재인 정부 들어 좌파 독립운동가 서훈의 물꼬는 다시 한 번 넓어졌다. 2018년 4월 국가보훈처는 해방 후 공산주의 활동을 했더라도 북한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독립 유공자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심사 기준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해방 후 조선공산당 활동 경력 때문에 여섯 차례나 독립 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던 손혜원 의원의 부친이 건국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 논란이 되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 문제는 좌파 독립운동가 서훈의 마지막 장벽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열단 활동으로 유명한 김원봉은 1948년 4월 남북 협상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고,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그는 1958년 11월 연안파가 숙청당할 때 함께 제거됐지만 북한 정권의 초창기 핵심 인사로 6·25전쟁 책임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원봉 서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독립운동에서 세운 공로를 강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이던 2015년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 '암살'을 보고 "남북 간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 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사회주의자들을 독립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포용성을 확인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월북 독립운동가 서훈, 대한민국 정통성 파괴할 우려

남과 북에서 모두 외면당해 온 월북 독립운동가를 서훈하자는 주장은 얼핏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김일성에게 버림받은 좌파 독립운동가를 우리가 보듬자는 주장은 호소력도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김원봉 서훈 문제를 주제로 독립기념관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헌환 아주대 교수가 발표한 '전환기의 보훈 정책: 국가 정체성의 재정립을 위한 시론'을 보면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교수는 "'촛불 혁명' 이후의 시대 변화는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타파하고 새로운 국가 및 사회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보훈 정책을 '소(小)한국주의'를 넘어서 '대(大)한국주의'에 따라 재정립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인식을 비판하며 남북한 정부의 '잠정성'을 인정하고 통일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보훈 정책 방향을 새롭게 잡자고 했다. 월북 독립운동가도 남북한을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서 재평가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족사적·국제법적 정통성에 입각해 수립된 대한민국이 북한과 동급의 '소(小)한국'이 되고, 남북한을 통합한 정체불명의 '대(大)한국'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중경에서 열린 1941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김원봉(오른쪽 끝)이 김구·조소앙·신익희(왼쪽부터) 등 임정 요인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중경에서 열린 1941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김원봉(오른쪽 끝)이 김구·조소앙·신익희(왼쪽부터) 등 임정 요인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조선일보 DB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독립'이 '해방'과 '건국'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갈파했다. '해방'이 전반전·예선이라면 '건국'은 후반전·결승이라는 것이다. 월북 독립운동가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건국을 향해 사투(死鬪)를 벌이는 절체절명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들이 자기가 바라던 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받으려고 할까.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들의 마지막 결단은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민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으로 이루어진다.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끝났지만 분단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국가 정체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월북 독립운동가 서훈은 통일이 된 다음 남북한 통합을 추진할 때 '민족 정체성' 강화 차원에서 검토할 문제이다. 지금 월북 독립운동가 서훈을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해체하려는 노림수이거나 오지랖 넓은 일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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