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신변 이상설, 숙청설이 나돌던 김영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잠적 51일 만인 3일 북한 관영 매체에 등장했다. 대미 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이 혁명화 조치(강제 노역 및 사상 교육)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는 본지 보도〈5월 31일 자 A1면〉가 나온 지 사흘 만이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영철 징계가 조기에 일단락됐을 수도 있고,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혁명화 조치 중이던 김영철을 급히 등장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인 가족 공연 관람 소식을 전하며 김영철을 행사 참석 간부 12명 가운데 10번째로 호명했다. 당 부위원장급 9명 가운데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김영철은 말석(末席)으로 보이는 김정은의 오른쪽 다섯째 자리에 앉았다. 김정은과 간부들이 다 함께 손뼉 치는 장면에선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잠적 전까지 김영철은 당중앙위 부위원장 중에서 박태덕·최휘보다는 먼저 호명됐다"며 "맨 끝에 호명된 건 그의 위상이 하노이 회담 이후 상당히 하락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정보 소식통은 "김영철이 당중앙위 부위원장직을 유지하는지도 확실치는 않다"고 했다.
김영철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김영철이 건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김영철이 통전부장직을 내놓고 50일 넘게 두문불출한 것 자체가 멀쩡하지 않다는 방증"이라며 "현재 남북 대화가 올스톱된 것도 김영철과 그가 이끌던 통전부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 때문으로 안다"고 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정보위에 김영철이 당 통전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보고했다. 북한 당국은 김영철을 비롯한 '하노이 협상팀'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숙청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의 등장이 일종의 '대미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의 특사로 트럼프 대통령을 두 차례 예방한 김영철에 대한 숙청이 자칫 '더 이상 미국과 협상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미국 때문에 김영철을 급히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김영철이 재등장했다고 해서 숙청이 없었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고 했다.
김영철에 대한 검열과 처벌이 조기에 마무리됐을 가능성도 있다. 고위 탈북자 A씨는 "혁명화는 사상 재무장과 분발 독려를 위한 것으로 재기의 가능성이 열린 처벌"이라며 "1개월, 2개월, 3개월짜리가 있다"고 했다. 또 "김영철이 자아비판을 잘해 복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김정은 정권 2인자'로 불리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2015년 11월 지방 협동농장으로 좌천돼 '혁명화 교육'을 받았지만 석 달 뒤 복권됐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이날 방송에 출연, "여러 경로를 통해 김영철이 혁명화 갔다는 얘길 들었다"며 "숙청설을 불식시키기 위해 잠시 등장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2016년 태영호 전 공사가 망명한 후 궁석웅 유럽 담당 부상 숙청설이 제기되자 북한은 나흘 만에 외교관 체육 경기에 궁 부상을 참석시킨 뒤 다시 내려 보냈다"고 했다. 2017년 2월 숙청설이 제기된 김원홍 당시 국가보위상은 50여일 만인 4월 15일 대장 계급장을 단 채 열병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이후 김원홍은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고 행방이 묘연하다.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김정은 어록'을 보도했다. '백두의 칼바람은 혁명가들에게는 혁명적 신념을 벼려주고 기적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따스한 바람이지만 혁명의 배신자·변절자들에게는 돌풍이 되어 철추를 내리는 날카로운 바람'이라는 내용이었다. 최근 북한 매체들이 '반당·반혁명,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자주 언급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과거 장성택 당 행정부장, 리영호 군 총참모장을 숙청한 뒤 나왔던 표현들도 이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