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강 있나요?"…생존 위해 불법 강의 찾는 미래의 공무원들

입력 2019.06.02 09:01

불법 강의 공유, 공시생들 사이에서 인기
수백만원 강의 비용 부담에 불법 알면서도 찾아
강의 공유 찾는 공시생들 노린 사기도 활개

"황종휴의 경제학 3순환 있나요?"
"목요일 밤 10시 40분, 신림동 법문서적 앞에서 만나요"

‘둠강’ 업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5분쯤 뒤에 답이 왔다. 둠강은 ‘어둠의 강의’를 줄인 말이다. 공무원 시험이나 각종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공시생(고시생 포함)에게 인기 있는 인터넷 강의를 불법으로 녹화한 것을 둠강이라고 부른다. 공시생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은밀한 줄임말이다.

둠강업자가 만나자고 한 신림동 법문서적은 각종 고시 관련 서적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를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공시생을 위한 서적을 판매하는 장소가 불법 강의를 거래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둠강·공유자·VOD 스터디…불법 강의 공유 이용하는 공시생

둠강 거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늦은 밤 이뤄진다. 둠강업자가 지정한 거래장소에 나가 있으면 야구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그에게 현금을 건네면 작은 쪽지 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쪽지에는 둠강을 볼 수 있는 웹하드 아이디(ID)와 비밀번호가 적혀 있다. 불법으로 마약을 거래하듯 은밀하게 이뤄지는 탓에 눈여겨 보지 않으면 거래가 이뤄지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노량진의 한 공무원 준비 학원 계단을 공시생들이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노량진의 한 공무원 준비 학원 계단을 공시생들이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공시생 50만명 시대’다. 노량진이나 신림에 거주하거나 이곳에 위치한 학원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과 국가고시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의 숫자는 대략 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시험에 합격해 공시생에서 탈출하는 인원은 1년에 대략 3만~4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열에 아홉은 계속 공시생으로 살아간다.

최근에는 공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자 각종 불법과 탈법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명 인터넷 강의를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보기 위해 불법으로 강의를 공유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공무원, 경찰,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청년들이 시험에 붙기 위해 불법을 동원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공시생 사회에서는 매일 같이 반복된다.

대표적인 방법이 ‘공유자’를 찾는 것이다. ‘행시사랑’ ‘공준모’ ‘독취사’ 등 각종 시험·취업 준비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공유자’를 구하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공유자는 같은 ID를 사용하면서 시간대를 나눠 따로 듣는 파트너를 뜻한다. 하나의 ID로 강의를 우선결제하고, 공유자를 구해 비용을 나누어 분담하니 강의비는 혼자 부담할 때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비용을 더 아끼기 위해 아예 ‘VOD 스터디’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한 공간에 모여 하나의 ID로 결제한 강의를 동시에 수강하는 스터디 모임이다. 주로 TV 모니터가 갖춰진 스터디룸이나 널찍한 카페에 3~4명씩 모여 함께 강의를 본다.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넷 강의 공유자를 구하는 게시글. 이같은 강의 공유도 모두 저작권법 위반이다. /인터넷 카페 캡처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넷 강의 공유자를 구하는 게시글. 이같은 강의 공유도 모두 저작권법 위반이다. /인터넷 카페 캡처
나눠듣는 사람이 많을수록 한 사람이 부담하는 비용은 줄어든다. 공유자까지 구한다면 실제 ID를 가진 사람이 내는 비용은 혼자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VOD 스터디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데다 공부를 강제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공유자’나 ‘VOD 스터디’가 여러 사람과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라면 ‘둠강’은 혼자 편하게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선호한다. 둠강 가격은 보통 정식 인터넷 강의의 20~30% 수준으로 책정돼 있다.

◇강의 하나 듣는데 200만원…기업 취준생의 두배 쓴다

인터넷 강의를 공유하는 건 불법이다.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과 여러 재산적 권리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 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강의 구매자 본인 이외의 사람에게 강의가 확대 및 재생산되는 것은 학원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므로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에서 공시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조선DB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에서 공시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조선DB
법을 공부하는 공시생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지만, 불법 강의 공유가 계속 되는 건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용 인터넷 강의는 보통 한 과목을 완전히 공부하는데 수백만원이 든다. 한 과목당 4~5개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한 강좌를 듣는데만 많게는 50만원이 들기도 한다. 경제학의 경우 1년치 강좌를 모두 수강하려면 200만원이 넘게 드는 게 보통이다.

행정고시의 모든 강의를 다 들을 수 있는 ‘프리패스’ 상품의 경우 600만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고, 공무원 시험용 ‘프리패스’ 상품은 300만원대에 판매된다. 여기에 취업에 필요한 토익과 토익스피킹 같은 영어강의, 공기업 입사를 위해 필요한 컴퓨터활용능력시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의 강의를 듣는 비용은 별도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취준생이 취업을 위해 사교육 시장에서 쓴 비용은 평균 342만 7000원으로 집계됐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지출은 평균 1년에 700만원 선으로 일반 취준생보다 두배 이상 많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외식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공시생들이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불법 강의 공유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최모(26·남)씨는 "불법인걸 알지만 공부하다보면 그런 죄책감이 없다. 인터넷을 보면 전부 그러고 산다. 오히려 '혼자 들으면 돈 많냐, 호갱이냐' 라는 말을 듣는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공시생 김모(27·여)씨도 "한달 월세 38만원, 식비 20만원, 독서실비 12만원이면 기본 생활비만 60만원"이라며 "모든 수업을 제값 주고 들으면 좋겠지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량진의 공시생들은 3000원짜리 컵밥으로 한끼를 떼운다. 노량진 학원가의 풍경. /조선DB
노량진의 공시생들은 3000원짜리 컵밥으로 한끼를 떼운다. 노량진 학원가의 풍경. /조선DB
◇공시생 노린 사기 행각도 판쳐

최근에는 불법 강의 공유를 하는 공시생을 노린 사기 범죄도 늘고 있다. 강의 공유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사기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노린 악질 범죄다. 예컨대 인터넷 카페나 학교 커뮤니티사이트에서 인터넷 강의를 공유하자고 글을 올린 후, 공유자에게 입금을 유도한 뒤 잠적하거나 ID를 줘서 안심시킨 후 몇일 뒤 환불해버리는 방식으로 사기를 친다.

이런 행각은 분명한 사기지만, 공시생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불이익을 염려해 가만히 참는 경우가 많다. 법률사무소 월인의 채다은 변호사는 "강의를 공유할 의사가 없음에도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수십만원 씩 편취한 경우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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