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딸 "아빠, 나 장난감 받았어" 전화 후… 비극이 된 3代 여행

입력 2019.05.31 03:09

헝가리 유람선 침몰… 한국인 7명 사망, 19명 실종

전남 여수에 사는 김모(여·42)씨는 지난 25일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D-day(디데이·중요한 날)'로 바꿨다. 김씨는 이날 언니(45), 여동생(40), 올케(50), 여조카(21)와 8박 9일 동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이들을 포함해 관광객 30명과 여행 가이드가 한 팀이었다.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이날은 디데이였다. 평소 딸아이를 돌봐주는 친정 부모를 위해, 수십년 함께 직장을 다닌 동료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병이 호전된 오빠를 위로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29일(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유람선 사고로 30일까지 한국인 7명이 숨지고 19명이 실종됐다. 구조된 7명 대부분도 이날까지 부모와 아내, 동생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다.

추모하는 한국인 관광객 - 30일(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을 찾은 한 한국인 관광객이 차선 분리대에 하얀 장미를 꽂은 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 33명이 타고 있던 허블레아니호는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사진 오른쪽) 부근 강물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된다.
추모하는 한국인 관광객 - 30일(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을 찾은 한 한국인 관광객이 차선 분리대에 하얀 장미를 꽂은 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 33명이 타고 있던 허블레아니호는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사진 오른쪽) 부근 강물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탑승자 가운데 최연소인 김모(6)양은 어머니, 외조부모와 함께였다. 김양의 어머니가 가게를 해 외할머니가 유치원생 김양을 도맡아 키웠다고 한다. 외지에서 일해 주말 부부로 지내는 김양의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이번 여행에 참여하지 못했다.

김양 아버지는 사고 5시간쯤 전 딸과 통화했다. 김양은 "엄마가 액체 괴물(반죽 형태 장난감)을 사줬다"며 들뜬 목소리였다. 아내는 "조금 이따 유람선을 탄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김양 아버지는 "가족이 출국하는 날 일 때문에 공항에 배웅 나가지 못해서 아내와 다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게 이렇게 마음에 걸릴 줄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여행은 독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등 발칸 2국과 동유럽 4국을 8박 9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사고 당일 여행객들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의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차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어부의 요새' '부다 왕궁' 등 관광지를 둘러봤다. 저녁 식사 후 다뉴브강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보는 것이 이날 마지막 일정이었다. 부다페스트 관광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날 밤 비가 많이 쏟아졌지만 유람선들은 정상 운항했다고 한다. 시누이 3명과 함께 이번 여행에 나선 황모(50)씨는 사고 직전 한국에 있는 친구 김모(50)씨에게 비 내리는 다뉴브강 사진을 보냈다. 황씨는 김씨에게 다뉴브강과 의회의사당이 보이는 사진과 함께 "지금 헝가리야" "그런데 비가 온다" "다음에 같이 여행 오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호텔로 돌아가는 생존자들 - 30일 오전(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 생존자들이 호텔로 가기 위해 한국 대사관이 지원한 차량에 타고 있다.
호텔로 돌아가는 생존자들 - 30일 오전(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 생존자들이 호텔로 가기 위해 한국 대사관이 지원한 차량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황씨는 평소에도 시누이들과 가깝게 지냈다"면서 "이번에도 시누이들과 친목을 도모하겠다면서 유럽에 간 것"이라고 했다. 퇴직 후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난 장모(61)씨 부부도 사고를 당했다. 장씨는 강원 강릉의 한 발전소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아내와 딸, 손자와 같이 가족 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안모(61)씨는 특허청 동료였던 최모(63), 유모(62)씨와 함께 부부 동반 여행을 온 참이었다. 일행 6명 중 안씨를 제외한 사람들은 이날 오후까지 구조 소식이 없었다. 김모(61)씨는 뇌경색으로 몸 절반을 못 쓰게 됐다가 회복한 기념으로 누나·여동생·조카와 떠난 여행에서 사고를 당했다. 김씨의 여동생(55)과 여동생의 딸(32)은 구조됐지만, 김씨와 김씨의 누나(62)는 30일 밤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 무학여고 동창인 이모(66)·안모(65)·정모(64)씨도 같이 유람선을 탔지만 이씨만 구조됐다.

이번 여행을 출발 때부터 전담해 인솔했던 여행사 직원 이모(36)씨는 2012년 '참좋은여행'에 입사해 유럽을 담당했다. 이씨의 직장 동료는 "휴가도 잘 쓰지 않고 성실하게 근무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유람선에는 이씨 외에도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가이드와 사진작가가 타고 있었다. 참좋은여행 관계자는 "현지 가이드와 사진작가의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다"며 "생존자 명단에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30일 오후 늦게까지 사망자와 실종자 신원을 거의 파악하지 못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망자 2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나머지 신원은 확인 중"이라고 했다. 사고를 당한 여행객 가족 43명은 여행사가 마련해 준 항공편을 이용해 사고 현장과 현지 병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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