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에 젖소 분양, 소 값을 우유로 받으며 '낙농보국' 일궈

조선일보
  • 한경진 기자
    입력 2019.05.31 03:01

    창업주 김복용 회장

    창업주 김복용 / 매일유업 제공
    매일유업 창업주 김복용(1920~2006년·사진) 회장은 식품업계에서 "한국 유업계의 큰 나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3000여 마리 젖소를 농가에 분양한 후 소 값을 우유로 받으며 '낙농 보국'을 일궜다.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1946년 단신 월남한 후, 서울 방산시장에서 사업을 하며 자수성가했다. 김 회장은 사업 기질이 남달랐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덕목은 '신용'이었다. 당시 불량 궐련을 팔지 않아 시장에서 신용을 쌓았고 방산시장 조합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매일유업 창업 전 공흥산업, 신극동제분을 경영할 때도 "고객이 믿고 찾도록 하는 것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북청공립농업학교 출신인 김 회장은 1969년 정부의 요청에 공익적 사명감을 갖고 유업계를 개척했다.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은 '품질 제일주의'였다. 선진 기술 제휴와 투자에는 누구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이었다. 국내 최초로 첨단 무균 생산 시스템인 ESL 시스템을 도입하며, 낙농업의 선진화에 앞장서 국민훈장 목련장,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 회장은 2004년 "돈이 안 된다"는 임원들의 반대에도 250억원을 들여 자연 치즈 공장을 세웠다. 당시 "남들 안 하는 사업을 벌이고 성공해야 우유가 남아돌아 울상 짓는 농가가 웃는다"며 개척자 정신을 강조했다.

    정작 김 회장 본인은 실향민 사업가로서 '검소한 생활'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칼국수를 즐겨 먹었고, 이면지를 썼다. 김 회장은 1996년 아호를 딴 진암장학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과 학술연구 지원활동에도 앞장섰다. 매일유업은 지금까지 650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