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갇힌 아이를 놀리듯 구경… 그것도 學暴

조선일보
  • 박세미 기자
    입력 2019.05.30 03:28

    법원 "화장실 문틀에 매달려서 봐… 피해학생에 정신적 충격줬다"
    구경한 학생 징계취소訴 패소 판결

    학교 폭력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남이 괴롭힘 당하는 장면을 구경하며 피해 학생에게 수치심을 줬다면 '학교 폭력'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직접 상대방을 때리거나 욕설을 하지 않아도 방관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굴욕감을 줬다면 그 역시 폭력이라는 취지다.

    친구가 화장실 갇혔는데, 문틀에 매달려 구경

    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이 학교 1학년 A군을 동급생 B군 등 10여명이 욕하고 때렸다. 전날 A군이 담임교사에게 "B군이 장애가 있는 친구를 계속 괴롭힌다"고 알렸다는 이유였다.

    가해 학생들은 A군을 복도로 불러 가슴과 등, 엉덩이를 발로 차고 밀쳤다. A군 책상을 짓밟고 침을 뱉기도 했다. A군이 화장실로 가자 가해 학생들이 뒤쫓아가 화장실 칸막이 안에 숨은 A군에게 욕을 하며 물 묻힌 휴지를 던져 넣었다. 동급생 수십 명이 화장실에 몰려가 이 광경을 지켜봤다.

    초·중·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 건수
    C군도 그중 하나였다. C군은 화장실 칸막이 앞에서 펄쩍 뛰어 문틀을 붙잡고 매달렸다. 칸막이 안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A군과 눈이 마주치자 눈인사도 했다. A군은 "C군이 나를 쳐다봐 수치심을 느꼈고, 태연하게 인사해 화가 났다"고 했다.

    이후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고 B군 등 주동자 7명에게 출석 정지 10일 등 징계 처분을 내렸다. 문틀에 매달려 A군을 내려다본 C군에 대해서도 '서면 사과' 처분을 내렸다.

    서면 사과는 가장 수위가 낮은 징계다. 하지만 C군 측은 "직접 폭력에 가담한 것도 아닌데 부당하다"며 징계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14부(재판장 김정중)는 지난 23일 A군과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C군의 행동은 따돌림에 준하는 것으로, 피해 학생에게 정신적 피해를 준 행위"라고 했다.

    점점 넓어지는 학교 폭력 범위

    교육계 전문가들은 "학폭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했다. 직접 가해자뿐 아니라 이른바 '적극적인 방관자'도 학교 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처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 조사에서 "학폭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학생은 2013년 2.25%에서 2017년 0.89%로 떨어졌다. 하지만 학폭위 심의 건수는 같은 기간 1만7749건에서 3만993건으로 되레 늘어났다. 학부모와 학생들 모두 학폭에 민감해지면서 적극적인 방관도 학폭이라고 보는 흐름이 강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행정법원이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놀리라고 시킨 뒤 목격자 무리에 섞여 이를 지켜본 중학생에 대해 "피해자가 모멸감을 느낄 걸 알았을 텐데도 적극 동참했다"며 학폭위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전수민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괴롭히는 걸 보며 'ㅋㅋ(웃는 소리)'이라고 쓴 학생도 '적극적 방관'으로 보고 징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과거에는 직접 폭력을 가한 학생만 가해자로 봤다면, 이제는 폭력을 적극적으로 지켜보거나 즐기는 것도 가해 행위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학폭인가'에 대해선 법원과 학폭위도 고민이 깊다. 같은 방관이라도 가해자 편을 들며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조롱한 학생과, 가해자가 무서워 꼼짝 못 한 학생을 똑같이 벌주긴 힘들다. 방관이 나쁘다는 걸 아직 잘 모르는 아이도 있다.

    서울의 한 초5 학부모는 "아직 도덕적 판단이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인데 싸움 구경을 했다고 가해자로 모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 생활안전부장 교사는 "학교에서 '방관도 폭력'이라고 교육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동조와 어쩔 수 없는 방관 중 무엇을 어디까지 처벌할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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