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두루뭉술 '황세모'에서 '황교감'으로… "황교안, 석달만에 한국당 안착"

조선일보
입력 2019.05.30 03:00

이동훈 논설위원이 본 황교안 한국당 대표 3개월

이동훈 논설위원
이동훈 논설위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취임 3개월을 맞았다. 정치권에선 대략 100일이면 리더로서의 '싹수'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책 읽듯' 연설하는 황 대표를 보며 한국당 사람들의 걱정이 적지 않았다. '저 양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5일 한국당의 광화문 야간 집회는 그런 걱정을 조금은 덜게 했다고 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18일 동안 4000여㎞ 민생 장정을 했다는 황 대표는 팔을 걷어올린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등장했다. 비교적 능숙하게 청중과 교감하며 20여 분 연설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석 달 전에 비하면 괄목상대였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에 재·보선, 문재인 정부 인사 참사로 정국이 요동쳤다. 한국당을 뺀 4당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렸고 그는 당원들을 이끌고 장외로 나왔다. 전국을 돌았다. 전당대회 때 탄핵에 대해 찬성(O)도 반대(X)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을 내놔 '황세모'로 불렸던 황 대표는 확실한 의사를 독한 표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외견상으론 어느덧 야당 지도자가 돼 있었다.

◇"학습 능력은 뛰어난 것 같다"

대중 연설 늘었다고 정치인이 된 건 아니다.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정치인 '싹수'를 보는 눈은 여러 인사의 명멸(明滅)을 지켜본 당 사무처 사람들이 정확하다. A씨는 "황 대표에 대한 국민·당원들 현장 반응만 놓고 보면 이회창급(級)은 된다. 아직 박근혜급은 안 된다. 어쨌든 안착은 성공"이라고 했다. B씨는 "등장 초기 당 장악력 등으로 봐선 이회창보다 낫고 박근혜 정도는 된다"고 했다. 당직자 C씨는 "황 대표의 조숙(早熟)은 세 사람 덕"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사라진 뒤 그 이미지가 투영된 황 대표에 대한 보수층의 기대, 문 대통령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 홍준표 전 대표에 비해 품위 있다는 평가 등이 그를 급성장시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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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참석해 양팔을 벌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은 무능·무책임·무대책 정권"이라는 요지로 원고 없이 20여분간 연설했다. /연합뉴스
현장 기자들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정치 DNA'가 있다고도 했다. "대중과 만나면 대충 손을 잡지 않고 진정성이 느껴지게 잡는다. 그때그때 현장에 맞는 멘트도 잘한다." 까칠하고 권위적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소탈해 놀랐다는 측근들도 있다. 황 대표는 '민생 대장정' 중에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서 잤다. 한 마을에 갔더니 수도 시설이 없었다. '다른 데 가서 샤워하고 오겠냐'고 했더니 "하루 안 씻는다고 큰일 안 난다"며 그냥 잠자리에 눕더라고 했다. 당 대표가 지방에 내려오면 식당과 메뉴를 정하는 게 수행원들에겐 큰일이다. 그런데 황 대표는 잡아 주는 대로 먹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한 당직자의 얘기다. "비싼 것은 안 된다는 것 외에 다른 주문은 없다. 이렇게 가리지 않고 밥 먹는 당 대표는 처음 봤다." 알고 보면 그는 서울 중림동 가난한 고물상집 막내아들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다.

◇새벽 기도로 하루 시작하는 야당 대표

황교안 대표의 3개월과 말말말
경기고 동기 중엔 교련복 차려입고 절도 있게 제식 동작하던 '학도호국단장' 황 대표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저녁 9시에 자고 새벽 2시에 일어났다. 정치권에 들어와 시간을 조금 늦췄을 뿐 그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민생 대장정을 하면서도 그렇게 자고 일어났다. 종일 대중교통을 타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이었지만 5시간만 잤다. 기도하고 신문·보고서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는 예법을 중시하는 침례교 전도사다. 온라인 보고 대신 문서 보고를 선호한다고 한다. 전국을 돌 때도 수행 참모는 소형 프린터를 챙겨 다녔다.

황 대표는 지난 12일 석가탄신일에 경북 은해사를 찾았다가 불교 예법을 무시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행사장에 합장 않고 두 손만 모은 채 서 있었다. 당직자들은 당황했다. 당직자 D씨는 "정치인이 절에 가면 합장하는 게 당연한데 그런 모습을 보여줘 너무 놀랐다. 정치 안 했으면 안 했지 종교적 신념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고 했다. 이후 '그러시면 안 된다'는 진언이 올라갔는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만 했다고 한다. 친박 출신 한 의원은 "종교 문제에선 아버지(박정희 대통령) 문제에 여지를 주지 않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느껴졌다"고 했다. 황 대표는 29일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한다"고 했다.

◇ "기초 과정은 잘 끝냈지만…"

의원·당직자 얘기를 종합하면 황 대표는 선거 지원, 장외 투쟁 등 야당 대표 기초 과정은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것 같다. 이제 심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대여 협상, 야권 통합 등 '정치력'이 필요한 과목이다. 그는 석 달간 투쟁하는 모습만 보였지 정치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유연성이 떨어진다' '집토끼만 챙긴다' '오른쪽으로만 달렸다' 등의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중도 확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같은 맥락이다.

석 달 언행만 보면 이회창 전 총재보다 더 완고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당직자 E씨는 "주변엔 진박·친박 출신 의원들, 박근혜 청와대 출신 실무자뿐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남원정' 등 소장파들을 통해 이미지를 보완하려 했는데 황 대표는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수도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반대편 시각도 있다. 황 대표 측근으로 알려진 김재원 의원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먼저다. 국민이 이분 정체성이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벌써 우왕좌왕하면 안 된다"고 했다. 막 입문 과정을 끝낸 황 대표 앞에 고난도 과제가 놓여 있다. 탄핵 사태 이후 떠나간 중도 보수층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지, 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은 어떻게 할지 등이다. 그는 "단계적이고 점차적으로 하겠다"고만 했다.


[정치 원로·전문가들 평가] "정권 비판만으론국민 설득 어려워…정치적 대안 보여줘야"

강원택 서울대 교수

"정치인 황교안이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의 정치관이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떠받쳐져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정권과 각을 세우면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갈수록 식상할 것이다. 갈등이 있으면 비판도 해야겠지만 그걸 풀어내는 것이 정치력이다. 과거 관료 출신 정치인들이 그걸 보여주지 못한 채 멈춰 섰다. 황 대표는 그걸 넘어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석 달 동안 강경·장외투쟁의 물결 위에 그냥 올라타고 왔다. 당이 강경 일변도로 투쟁하니 당대표로서 리더십을 보일 일이 없었다. 강경투쟁만 하면 됐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과제다. 정권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거친 말 혹은 슬로건으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뭐가 잘못됐는지 얘기하고, 국민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자기 콘텐츠를 내보여야 한다. 정국을 운영하는 능력도 보여줘야 한다."

전원책 변호사

"정권과 각을 세우고 장외투쟁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대중 흡인력이 부족해 보인다. 대중이 지금 진정 고통스러운 게 무엇인지,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중은 이미 임계점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보수 통합이 안 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박·비박 문제, 바꿔 말해 탄핵 문제를 빨리 정리해 보수 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

"절대적 기준을 놓고 보면 국민에게 보수의 리더로서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줄 정도는 되지 못했다. 장외투쟁이 불가피하더라도 투쟁의 이유, 그리고 그 책임이 정부와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광주에 처음 갔을 때 그냥 물러난 것은 잘못됐다. '광주도 대한민국 아니냐'며 끝까지 버텼어야 했다. 결기를 좀 더 보여줬어야 했다. 상대적 기준으로 평가하면 이전 보수 리더보다는 품격 측면에서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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