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가족 3대가 보물처럼 지켜온 3·1 독립선언서… 100년 만에 고국으로

입력 2019.05.29 03:01

사토씨, 독립기념관에 원본 기증… 祖父가 3·1운동 현장서 입수

"우리 가족이 다섯 차례 이사할 때마다 언제나 조심하면서 마지막에 차에 실었던 것이 독립선언서였죠."

일본인 가족이 3대에 걸쳐 보관해온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 원본이 10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28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 일본 나가사키현의 전직 교사 사토 마사오(佐藤正夫·67)씨가 독립선언서 원본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가로 46.5㎝, 세로 22.5㎝의 선언서 원본은 세월이 흘러서 노랗게 바랬다. 이 선언서는 평양에서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던 그의 할아버지 사토 요시헤이(佐藤芳兵)가 평양 만세 시위 당시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토씨의 조부는 한국인 2명을 채용하고 한국어 쓰기와 말하기를 배워 우리말에 능숙했다고 한다.

일본 전직 교사 사토 마사오(오른쪽)씨가 3대에 걸쳐 소장했던 독립선언서 원본을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에게 기증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평양 만세 시위 현장에서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전직 교사 사토 마사오(오른쪽)씨가 3대에 걸쳐 소장했던 독립선언서 원본을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에게 기증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평양 만세 시위 현장에서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뉴시스

그의 가족은 1929년 사업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1954년 세상을 떠난 사토씨의 조부가 남긴 유품이 독립선언서다. 사토씨는 "할아버지가 왜 독립선언서를 보관하셨는지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곱게 접어서 대나무 상자에 보관한 것으로 볼 때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토씨는 대학에서 일본사를 전공하고, 28년간 고교와 장애인 학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그는 "수업 시간에 창씨개명에 저항하는 한국인 가족들을 다룬 영상 자료를 보여주면서 강제로 이름이 바뀌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일본어를 쓰도록 강요받는 것이 얼마나 억압적인지 가르치려고 했다"고 말했다. 2007년 퇴직 후 일본 나라대 통신대학 과정에서 일본사를 다시 공부했다. 2011년 졸업 논문으로 '3·1운동에서 독립선언서의 전개와 의의'를 발표했다.

사토씨의 아버지인 목사 사토 도시오(佐藤俊男)도 평양에서 태어나 3·1운동을 목격했다. 그는 1984년 '타국의 고향-조선으로 건너간 일본의 아이들'이라는 회고록에서 흰색 옷차림의 수많은 한국인이 질서정연하게 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외쳤던 모습을 기록했다. 책 후기에 '타향을 고향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1919년 당시 인쇄소 보성사는 3·1 독립선언서를 2만1000여장 인쇄했다. 하지만 원본은 현재 한국에도 8장만 남아 있다. 사토씨가 소장해온 독립선언서 판본은 '조선(朝鮮)'이라는 글자가 '선조(鮮朝)'로 거꾸로 표기된 것이 특징. 이 때문에 보성사의 1차 인쇄분으로 추정된다. 2차 인쇄분부터는 '조선'으로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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