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장을 건네줄 뿐인데 이렇게 극적일 수 있을까. 모피를 두른 샛노란 외투를 입고 진주로 단장한 귀부인이 편지지에 몇 줄을 써 내려간 순간, 외출에서 돌아온 하녀가 불쑥 편지를 내민다. 놀란 듯, 한 손을 턱 끝에 대고 고개를 돌린 귀부인과 조금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뗀 하녀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그 중간에 멈춰 있는 작은 편지는 지나치리만큼 하얗게 빛난다. 선명한 색채, 단단한 구도, 섬세한 조명이 만들어낸 화면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이 고요하게 흘러나온다.

요한네스 페르메이르, 편지를 건네주는 하녀와 여인, 1667년경, 캔버스에 유채, 89.5×78.1㎝, 뉴욕 프릭 컬렉션 소장.

화가 요한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1632~1675)는 지금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손꼽히지만, 19세기 중반에 학자들이 재발견할 때까지 근 200년 동안 잊혀 있었다. 고향인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었고, 비싼 물감을 많이 쓴 데다 워낙 치밀하게 그림을 그린 탓에 남긴 작품이 수십 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화가이자 동시에 화상을 겸했던 페르메이르는 불황을 거치면서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졌고 43세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기록을 따르면 페르메이르의 아내는 남편 사후, 그동안 밀린 빵값을 갚기 위해 제빵사에게 ‘시턴(기타의 일종)을 연주하는 사람’과 ‘두 사람이 있고 그중 하나가 앉아서 편지 쓰는 그림’을 넘겨줬다고 한다. 바로 이 그림이다. 빵값이 하면 얼마나 했겠나 싶지만, 사실 페르메이르에게는 자식이 열셋이나 있었으니, 그 빚은 제빵사의 연수익을 넘긴 금액이었다. 아내는 이 그림을 되찾고자 매년 돈을 갚았지만, 결국 되찾지 못한 모양이다. 이토록 시적인 그림 뒤에 이토록 원초적인 빵값이 있다니, 예술가의 삶이 안쓰럽지 않은가.